[아시아경제 이혜영 기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자국에 주재하는 미국 외교관 755명을 추방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법안이 미 의회를 통과한 데 따른 보복조치로 풀이된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 국영매체들과의 인터뷰에서 "1000여명의 미국 외교관과 기술직 요원들이 러시아에서 일하고 있다"면서 "(그 중) 755명이 러시아에서의 활동을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와 미국과의 향후 관계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는 아주 오랫동안 미국과의 관계가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기다려왔지만 변화가 있더라도 여러 정황을 볼 때 조만간은 아닐 것"이라고 덧붙였다.
푸틴 대통령은 "우리도 아무런 대응 없이 넘어가지는 않을 것임을 보여줘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외교관 출국 압박 카드를 꺼내든 배경을 설명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미국 측에 오는 9월1일까지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관과 상트페테르부르크·예카테린부르크·블라디보스토크 주재 미국 총영사관에서 일하는 외교관과 기술요원 수를 미국에 주재하는 러시아 외교관 및 기술요원 수와 정확히 맞출 것을 제안한다"면서 "이는 러시아 내 미국 외교 공관 직원 수가 455명으로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미 하원은 지난 25일 북한·이란·러시아에 대한 제재 법안을 일괄 처리했고 27일에는 미 상원이 해당 법안을 가결하면서 대러 추가 제재를 승인했다. 이 법안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과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에 대한 기존 대러 제재에서 한층 강화된 것이다.
미 의회를 통과한 3개국 패키지 법안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최종 서명만 남겨두고 있다.
러시아의 이번 맞제재는 지난해 말 미국이 단행한 러시아 외교관 무더기 추방에 대한 보복 성격도 함께 지닌 것으로 풀이된다.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지난해 12월 말 미 대선에서 러시아가 민주당 측 인사들의 이메일을 해킹했다는 정보와 관련해 자국에 주재하던 러시아 외교관 35명 추방과 미국 내 러시아 공관 시설 2곳 폐쇄 등의 제재를 가했다.
당시 푸틴 대통령은 이 조치에 대해 즉각적인 맞대응을 하지 않았다. 취임을 앞두고 있던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의 이런 결정에 "현명하다"는 화답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관계 개선을 기대했던 러시아는 최근 들어 양국 갈등이 더 깊어지자 미국에 대한 맞제재를 결정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혜영 기자 itsm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