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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정이 만난 사람]"블랙리스트 상처, 문학이 치유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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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진흥정책위원장에 선출된 '화해와 치유의 시인' 신달자

북촌 한옥 옆 계단에 선 신달자 시인 (사진=백소아 기자)

북촌 한옥 옆 계단에 선 신달자 시인 (사진=백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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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서소정 기자]"문학은 모든 갈등을 안은 사람에게 치유의 힘이 돼야 합니다."

최근 북촌에 위치한 카페에서 만난 신달자(74) 시인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 취업난에 허덕이는 젊은이, 정치갈등 등을 보면 평화가 언제 올지 막연해지지만 그럴 때일수록 문학은 더욱 진지하게 가야 한다"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어 "나라가 잘 되면 우리 모두가 누리는 것이니 국민의 성찬(盛饌)"이라며 "먼저 정치인이 잘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우리나라의 미래는 나에게 있는 게 아니다. 내 밑에서 나와야 한다"며 문화계도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상처를 딛고 본연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고도 했다. '화해와 치유의 시인' 신달자. 이제 종심(從心ㆍ70)을 훌쩍 넘긴 그는 '여전히' 뜨거워보였다.

"삶은 우리가 10년, 20년 살다가 그만두는 것이 아니잖아요. 삶에 어떤 어려운 것이 닥쳐도 뛰어 넘어서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 24년간 병수발, 인생의 유일한 스승이었던 어머니의 죽음, 본인의 암 투병 등 신 시인은 사연 많은 삶을 살아오면서 스스로 일어서는 힘을 기르는 데 집중했다. "어설픈 달관이 절망보다 나쁘다"는 그는 그의 말처럼 늙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고 있는 듯 했다.
1943년 경남 거창에서 1남 6녀 중 다섯째 딸로 태어난 그가 문학에 대한 꿈을 키운 것은 중학교 시절 우연히 보게 된 아버지의 일기장 때문이었다. 당시 건강, 경제력, 가족, 사회적 지위 등 남부러울 게 없는 '성공한 아버지'라 여겼던 아버지의 일기장에는 '나는 혼자 울었다'라고 적혀 있었다. 신 시인은 "너무 잘살고 있는 것으로 보였던 아버지였기에 충격은 더 컸다"면서 "이를 계기로 글을 쓰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고2 때 경남 백일장에서 장원한 것을 계기로 숙명여대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한 그는 대학시절을 '시와 연애하던 시절'이라고 회고했다. 대학교 4학년 때는 김남조 교수 댁에 머물면서 시를 배웠다.

"당시 김남조 선생님이 일주일에 한편씩 시를 가져오라고 했어요. 그런데 저는 잠도 안자고 밤새 시를 쓰면서 열편씩 가져가기도 했죠. 시인은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괜히 자청해서 우울했던 시절이었어요(웃음). 그러면 선생님이 '네가 천재냐?' 꾸짖으시며 내 앞에서 시를 두 줄 정도만 남기고 다 지우셨어요. 그러면서 '다시 써와' 하시는데, 그 '다시'라는 말은 이후 제 인생의 지팡이가 됐어요."

신 시인은 남편이 중환자실에 오래 누워있을 때 어머니가 병원에서 하룻밤 묵은 뒤 딸에게 "그래도 니는 꼭 될끼다"는 말을 남겼다. 그 후 6개월 뒤 딸의 성공이 곧 자신의 꿈이었던 어머니는 눈을 감으셨다. 신 시인은 "어머니는 빌딩 같은 유산처럼 그 말을 남기고 돌아가셨다"면서 "내게 그 말은 종로에 선 빌딩 (같은 유언)"이라고 말했다.

그의 창작열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에는 2년간 북촌 한옥에 살며 쓴 시집 '북촌'을 출간했다. "한옥 대문이 열리면 언제든 외할머니가 반갑고 다정하게 맞아줄 것 같은 느낌"이라면서 "자연에서 사는 것 같아 몸이 편하다"고 한옥예찬론을 폈다.

국내 문학을 활성화하기 위한 작업에도 나서고 있다. 신 시인은 지난 3월 문화체육관광부 자문기구인 문학진흥정책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그는 "국립한국문학관 건립에 전국 지차제간 유치경쟁이 치열했는데 서울에 지을 것"이라면서 "앞으로 구체적인 논의를 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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