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는 제가 감을게요"
11일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이발소 '성우이용원'의 풍경이다. 만리재 고개에 위치한 성우이용원은 1927년부터 3대째 이어져오고 있다. 손님들도 그만큼 오래됐다. 스스로 머리를 감은 남성은 자신을 20년 된 '어린' 단골이라 소개했다. 그는 "와보면 왜 단골이 되는 지 알 것"이라며 자리를 떠났다.
이 씨는 "머리를 솎아내는 기술이 시간을 요한다"며 "이 기술을 보유한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내가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이 씨는 16살이 되던 1965년부터 이발을 시작했지만 자신만의 기술을 터득하는 데 37년이 걸렸다.
이 씨는 "믿고 맡겨야 한다"며 이발사에 대한 신뢰를 중시한다. 그래서인지 손님들은 원하는 머리 스타일을 주문하지 않는다. 손님이 자리에 앉으면 이발사는 말없이 가위를 든다. 정재계 인사들이 와도 마찬가지다. 2011년에 이건희 삼성 회장이 다녀간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이 씨에게 머리를 맡긴 한 남성은 "사장님은 할 거 다 해줘서 다른 데보다 시간이 2~3배는 더 든다"며 "애쓰는 것에 비해 비용이 저렴하다"고 말했다.
성우이용원의 '조발'(調髮·머리털을 깎아 다듬음) 가격은 1만3000원. 지금은 조발뿐이지만 80~90년대에는 염색이나 파마도 이용할 수 있었다. 그 당시 이 씨는 쉬는 날 여성 손님을 받기도 하고 아내에게 직접 파마를 해주기도 했다.
이 씨는 가장 벌이가 좋았을 때를 IMF 시기로 꼽는다. 주변에 비해 저렴한 가격도 아니었는데 손님들이 줄을 지었다. 이 씨는 "커트 가격이 4000~5000원이었는데 하루에 500만원을 넘게 벌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씨는 "그때가 좋지만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당시 이 씨는 끼니를 걸러 가며 밤낮으로 일했다. 요로결석 등 갖은 잔병도 전부 그때 얻었다고 한다. 그가 후대양성에 대한 생각을 접은 이유다. 이 씨는 이발사를 "골병드는 직업"이라며 "아들에게 시킬 마음이 없다"고 밝혔다.
최근 들어 이 씨의 몸 상태는 더욱 악화됐다. 이 씨는 "척추 질환으로 인한 통증이 상당하다"며 "어제는 왼쪽 다리가 마비될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바지 사이즈는 3인치나 줄었다. 결국 이 씨는 오는 5월31일까지 잠정 휴업을 선언했다.
이날도 이 씨는 닷새 만에 성우이용원 문을 열었다. 한 단골손님의 전화 때문이다. 우연히 성우이용원을 찾은 손님들은 "운이 좋았다"며 기뻐했다. 한편 "사장님 얼굴이 많이 상했다"며 걱정과 조언을 늘어놓기도 했다.
저녁 7시 이 씨의 가위질이 모두 끝났다. 이 씨는 "전에는 16시간씩 일했는데 이젠 몸이 아파서 못 하겠다"고 토로했다. 그 시각 성우이용원을 찾은 이 씨의 아내가 수건 빨래에 나섰다. 이 씨는 그제야 창고에서 지팡이를 꺼내 체중을 실었다.
아시아경제 티잼 김경은 기자 silver@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