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밥그릇을 바꿔야 한다. 지금보다 작은 밥그릇에 밥을 적당히 담으면 우리 뇌는 '충분한 양'을 먹는 것처럼 인식하고 이내 포만감을 느낀다. 일종의 눈속임이다. 이런 뻔한 거짓말에 스스로 속아 넘어가는 것이 인간의 취약함이다. 눈앞의 욕망에 쉽게 흔들리는 원시적인 허약함이랄까.
그런데도 자기 그릇만 채우려고 남의 것을 빼앗거나, 이미 충분히 넘치는데도 더 갖겠다며 추태를 부리는 무리들이 주변에 숱하다. 겨우 한 냥어치의 그릇이 만 냥어치의 권력을 쥐락펴락하다보니 주변이 불행해지기도 하고, 종지그릇인 주제에 대양(大洋)을 담겠다고 허세를 부리는 바람에 이웃들이 상처를 입기도 한다. 그릇이 안되는 인간들이 '줄'과 '빽'과 '배경'에 기대 권위를 탐하고 오만방자해지는 꼴에 국민들이 거품을 무는 것이다.
자기 그릇에 대한 성찰은 나와 이웃과 조직에 대한 예의다. 우리는 저 그릇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저 그릇을 어떻게 키워갈 것인가. 사랑이나 증오? 이타심이나 이기심? 크고 깊고 담대한 그릇에는 이웃들이 오가게 마련이요, 바닥난 종지그릇에는 똥파리도 꼬이지 않는 법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심판 최후진술을 보면 얄팍하고 옹졸한 마음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14페이지 분량에 1822개 단어로 이뤄진 진술서는 '국민'(20번), '국가'(14번), '약속'(13번) 따위의 기만적인 단어들을 남발하면서 '반성 없는 아집'과 '뉘우침 없는 몽니'로 일관한다.
과연 인간 박근혜의 그릇이 조금이라도 '대통령감'에 가까웠다면 대한민국이 이 지경까지 왔을까. 도대체 박 대통령의 마음에는 어떤 늑대가 앉아 있는 것일까. 다음 대선에서는 '리더의 그릇'을 제대로 지닌 인물을 뽑을 수 있을까. 답은 다시 우리로 향한다. 결국은 내가, 우리가, 우리의 그릇이 깊고 넓어져야 한다. '대통령의 수준이 국민의 수준'이라는 말을 가슴 깊이 새기면서.
이정일 산업부장 jay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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