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용은 흔히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임금을 지칭하는 혼군(昏君)과 용군(庸君)을 함께 일컫고, 무도는 세상이 어지러워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음을 묘사한 논어의 '천하무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성어를 추천한 이 교수는 "연초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온 나라의 민심이 흉흉했으나 정부는 이를 통제하지 못하고 무능함을 보여줬다. 중반에는 여당 원내대표에 대한 청와대의 사퇴압력으로 삼권분립과 의회주의 원칙이 크게 훼손됐고, 후반기에 들어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으로 국력의 낭비가 초래됐다"고 지도자의 무능력함을 꼬집었다고 한다.
그런데 올해 나라 상황은 어떤가. 혼용무도가 무색할 지경이다. 나라 처지는 어둡다는 말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칠흑 같은 어둠의 장막이 온 나라를 뒤덮고 있다고 해도 전혀 틀리지 않다. 북핵위기와 경제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문고리 3인방의 국정농단에 이어 이번에는 비선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터졌다. 최순실 사태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다. 최순실이 누구인가. 정윤회씨의 전 부인 아닌가. 범의 힘을 빌려 행세를 한 여우가 아니라 범인양 행세한 여우가 아닌가. 최순실은 대통령을 내세워 국정을 주물렀다. 심지어 대통령 행세를 하며 청와대 전 부속비서관에 직접 지시를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 일파들은 국가를 사익추구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켰다. 대통령이 이를 방조한 탓에 민주주의는 파탄 났고 국격은 땅에 떨어졌으며 대한민국은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됐다. 혼용무도가 극에 도달했다는 야당 대표의 지적은 늦어도 한 참 늦다.
두 번이나 국민 앞에 사과한 대통령의 진정성을 믿고 싶다. 박 대통령은 검찰수사에 응하고 특검수사도 수용하겠다는 뜻도 믿고 싶다. 그럼에도 민심이 들끓고 있는 이유를 박 대통령과 청와대, 여당지도부는 먼저 헤아릴 것을 촉구한다. 지난주 말 청와대를 코앞에 둔 광화문 광장에 모여 '하야'와 '퇴진'을 촉구하는 수십 만 국민들의 심정을 먼저 헤아릴 것을 당부한다. 대한민국을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만든 주역인 국민들은 국민권익을 위해 나라를 이끄는 훌륭한 대통령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직시할 것을 권한다. 이 어둠을 걷어내는 훌륭한 대통령이 되고 안 되고는 대통령에게 달려있다.
박희준 편집위원 jacklon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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