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희 개인전 내달 23일까지 OCI미술관
사회적 메시지 영상 드로잉 작품 한자리
[아시아경제 김세영 기자] 중견작가 정석희(52)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한다. 전시장 한 쪽에는 작품별로 그 제작과정을 담은 책을 여러 권 비치해 관람객의 이해를 도왔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순간순간 삶의 궤적을 담았다고 한다.
정 작가는 빈 캔버스 앞에서 의식의 흐름을 따라 작업한다. 작품은 완성 직전까지 마치 생명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끊임없이 변모한다. 그래서 그때그때의 감정과 시대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영상 드로잉은 그 표현수단으로 적합하다. 영상 회화와 영상 드로잉은 완성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붓질로 지우고 덧입히는 과정의 이미지들을 낱낱이 모아서 연결한다. 단순한 평면 회화나 드로잉이 가질 수 없는 '깊이감'을 담아낸다.
정 작가는 "초기에는 내면에 집착했다. 개인의 문제나 경험, 실존문제를 놓고 작업했다. 그러다 문득 작가의 일이 개인의 일만이 아니라 사회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작가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회문제는 곧 작가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다. 작가가 가장 예리한 촉수로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소통해야한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4월16일 진도 앞 바다에서 수백 명이 탄 배가 침몰하면서 나의 드로잉은 좌초되었다. 한동안 그리지 못했다. 모든 의미는 무의미해졌다. (중략) 그래도 나의 작업은 계속되어야 했다. 나는 세상만사 실타래같이 엉킨, 꼬일대로 꼬여버린 외부의 세계에서 나의 내부로 더욱 깊이 가라앉아보려 애썼지만, 허사였다. 나의 내부는 용광로처럼 끓어올랐고, 좀처럼 식지 않았다. 이 작업은 나로부터 시작해서 나에게로 끝나지만, 그 '나'는 '너'의 문제로 전이되고, '너'는 '나'의 문제로 확산되었다. '나'와 '너'는 곧 하나였다."
하지만 묵직한 사건을 표상하면서도 상상의 요소들을 놓치지 않는다. '구럼비'에서도 바위에 사는 정령을 그려 넣어서 치유의 메시지를 던진다. 이는 '끝나지 않은 이야기(2014)', '늪(2016)', '명멸하는(2016)'으로 이어진다. 특정 사건을 사회 속 개인의 삶과 소통의 문제로 아우르며 더욱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정석희 개인전 '시간의 깊이'는 오는 12월23일까지 OCI미술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최근까지 이어온 작가의 20년간 작업물을 총망라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작품들이 압축된 영상 드로잉과 영상 회화 열 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와 함께 평면 회화 열 점과 소형 드로잉도 여럿 선보인다.
김세영 기자 ksy1236@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