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계의 세이렌, 계산된 광기
PJ하비 스스로도 자신의 첫 두 앨범이 환영 받을 줄 몰랐다. 그래도 그 저작료 덕에 그는 영국의 시골인 요빌(Yeovil)에 있는 주택을 구매했다. “창문을 열면 들판뿐이고, 이웃도 없는” 새 집에서 그는 세 번째 앨범에 들어갈 노래들을 만들었다. 평소에 외출도 않고 말수 적은 성격이라고 하니 작업에는 최적의 환경이었을 것이다.
앨범을 시작하는 ‘투 브링 유 마이 러브’의 음산하고 묵직한 질감은 앨범 전체를 관통한다. 단조로운 곡조에 맞춰 흐느끼는 목소리는 웅장하고 기타 소리는 마치 떨리는 여섯 줄이 보일 것처럼 생동감 있다. 절도 있는 기타 리프를 앞세운 ‘밋 제 몬스타(Meet Ze Monsta)’, ‘롱 스네이크 모안(Long Snake Moan)’의 파괴력도 굉장하다.
이번 앨범의 가장 큰 변화는 두터워진 사운드와 장르적 변화다. 그의 곡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다운 바이 더 워터(Down By the Water)’는 이런 변화가 잘 드러나는 곡이다. 겹겹이 쌓인 퍼커션 위를 오버드라이브 잔뜩 걸린 베이스가 장악하고, 바이올린과 비올라, 오르간이 빈곳을 속속 채운다. 포크적인 느낌의 ‘센드 히즈 러브 투 미(Send His Love To Me)’ 역시 어쿠스틱 기타가 중심을 잡지만 어느새 오르간과 현악이 가세해 주위를 둘러싼다.
붉은 드레스와 빨간 입술을 한 우아한 재킷이 처음에는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를 연상시키지만 반복해 들을수록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의 ‘오필리아(Ophelia)’가 떠오른다. 아버지를 살해한 연인 때문에 미쳐버린 셰익스피어의 여주인공처럼 꾹꾹 눌러 담아둔 광기가, 철저히 계산된 사운드 속에서 선명하게 전달된다. 그 내면을 거침없이 쏟아낸 이 앨범은 분명 1990년대 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수작이다. 예쁘고 귀엽고 섹시한 여성가수들이 득세하는 팝씬, 남성적 문화가 만연한 록계에서 PJ하비는 정말 매력적인 존재다.
■ '서덕의 디스코피아'는 … 음반(Disc)을 통해 음악을 즐기는 독자를 위해 '잘 알려진 아티스트의 덜 알려진 명반'이나 '잘 알려진 명반의 덜 알려진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코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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