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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덕의 디스코피아 28] P. J. Harvey - To Bring You My Love(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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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계의 세이렌, 계산된 광기

P. J. Harvey - To Bring You My Love

P. J. Harvey - To Bring You My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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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나 셀린 디온(Celine Dion) 등의 디바들이 화끈한 가창력으로 사랑의 메시지를 전파하던 시절, 폴리 진 하비(Polly Jean Harvey, 이하 PJ하비)는 앰프를 찢어버릴 것 같은 기타 소리와 함께 등장했다. 얼터너티브라는 1990년대의 흐름에 있긴 하지만 PJ하비의 주술적인 가사와 광기서린 거침없는 사운드, 파격적인 퍼포먼스는 주류의 음악문법과 확연히 달랐다. 이때만 해도 그가 훗날 대영제국훈장까지 받게 될 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PJ하비 스스로도 자신의 첫 두 앨범이 환영 받을 줄 몰랐다. 그래도 그 저작료 덕에 그는 영국의 시골인 요빌(Yeovil)에 있는 주택을 구매했다. “창문을 열면 들판뿐이고, 이웃도 없는” 새 집에서 그는 세 번째 앨범에 들어갈 노래들을 만들었다. 평소에 외출도 않고 말수 적은 성격이라고 하니 작업에는 최적의 환경이었을 것이다.
매 앨범 새로운 시도를 곁들이는 하비답게 세 번째 앨범은 디스토션의 함량을 줄이고 풍성한 사운드로의 변화를 시도한다. U2와 스매싱 펌킨즈(Smashing Pumpkins) 등 주류의 밴드들과 작업했던 플루드(Flood)가 프로듀서를 맡으면서 사운드의 질감은 훨씬 선명하고 단단해졌다. 하지만 PJ하비 특유의 찌그러진 기타 소리와 창법까지 사라지지는 않았다.

앨범을 시작하는 ‘투 브링 유 마이 러브’의 음산하고 묵직한 질감은 앨범 전체를 관통한다. 단조로운 곡조에 맞춰 흐느끼는 목소리는 웅장하고 기타 소리는 마치 떨리는 여섯 줄이 보일 것처럼 생동감 있다. 절도 있는 기타 리프를 앞세운 ‘밋 제 몬스타(Meet Ze Monsta)’, ‘롱 스네이크 모안(Long Snake Moan)’의 파괴력도 굉장하다.

이번 앨범의 가장 큰 변화는 두터워진 사운드와 장르적 변화다. 그의 곡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다운 바이 더 워터(Down By the Water)’는 이런 변화가 잘 드러나는 곡이다. 겹겹이 쌓인 퍼커션 위를 오버드라이브 잔뜩 걸린 베이스가 장악하고, 바이올린과 비올라, 오르간이 빈곳을 속속 채운다. 포크적인 느낌의 ‘센드 히즈 러브 투 미(Send His Love To Me)’ 역시 어쿠스틱 기타가 중심을 잡지만 어느새 오르간과 현악이 가세해 주위를 둘러싼다.
가사의 역할로 인해 주술적인 분위기도 한층 강해진다. 밤에 들으면 소름끼칠 사운드 속에서 ‘예수, 지옥, 악마’ 등의 단어들이 유난히 반복된다. 남자의 아이를 가진 여자가 빌리를 부르는 포크 송 ‘커먼 빌리’(C’mon Billy), 질퍽한 오르간 위에 걸쭉한 보컬과 신음이 교차하는 ‘투 댄서(To Dancer)’는 오디세우스가 만난 세이렌이 이런 걸 불렀을까 싶을 정도로 음산하고 매혹적이다.

붉은 드레스와 빨간 입술을 한 우아한 재킷이 처음에는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를 연상시키지만 반복해 들을수록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의 ‘오필리아(Ophelia)’가 떠오른다. 아버지를 살해한 연인 때문에 미쳐버린 셰익스피어의 여주인공처럼 꾹꾹 눌러 담아둔 광기가, 철저히 계산된 사운드 속에서 선명하게 전달된다. 그 내면을 거침없이 쏟아낸 이 앨범은 분명 1990년대 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수작이다. 예쁘고 귀엽고 섹시한 여성가수들이 득세하는 팝씬, 남성적 문화가 만연한 록계에서 PJ하비는 정말 매력적인 존재다.


■ '서덕의 디스코피아'는 … 음반(Disc)을 통해 음악을 즐기는 독자를 위해 '잘 알려진 아티스트의 덜 알려진 명반'이나 '잘 알려진 명반의 덜 알려진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코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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