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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앤비전]낡은 기업집단 규제방식을 바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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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홍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김지홍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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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에 개통된 남산2호터널은 속도제한이 시속 40km이다. 그런데 교통량이 많은 출퇴근시간을 제외하고 그 속도로 다니는 차는 한 대도 없다. 만약 2호 터널을 40km 속도로 주행한다면 뒤차들이 빵빵거리며 빨리 안 간다고 난리가 날 것이다. 그런데 지난 46년간 아무도 남산2호터널의 속도제한을 높여 달라고 요구하거나 낮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없다. 그냥 알아서 안 지킨다. 경찰청에서도 굳이 속도제한을 높였다가 사고라도 나면 책임을 질까봐 모른 척 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나라 속도제한의 현실이다. 우리나라 각종 규제들도 이와 마찬가지 상황이다. 법과 규정은 과도하게 엄해서 국민들은 적당히 법을 어겨야 살 수 있고, 걸리는 사람은 항상 억울하며, 법대로 사는 사람은 늘 손해 보는 느낌이다. 그런데도 규제완화는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는다. 혹시나 규제를 완화했다가 사고라도 나면 책임질까봐 정부부처가 굳이 나서지 않는 것이다. 지난 수년간 대통령마다 규제개혁을 외쳤지만 별 진전이 없는 이유다.

지난 3일에도 공정거래위원회에서 2016년도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명단을 발표했다. 지난 8년 동안 여전히 자산 5조원이상이라는 기준이 그대로라 기업집단 수가 매년 늘 수밖에 없다. 올해는 65개 기업집단에 그 소속회사 수는 1736개사나 된다. 기업들은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 관한 기준이 완화돼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정부의 눈밖에 날까봐 무서워서 아무도 앞에 나서지 못한다. 공정위도 2009년부터 지금까지 기준이 묶여 있어서 자산총액 기준을 올리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은 하겠지만 괜히 올렸다가 혹시나 대기업 봐주기 행정이라고 여론의 뭇매를 맞을까봐 눈치만 보면서 복지부동하고 있다.
시장경제하에서 기업들은 경쟁력 강화에 힘써야 한다. 그리고 규모와 관계없이 각종 불법을 행하는 기업과 기업인은 법에 따라 처벌을 받게 돼 있다. 그럼에도 기업집단을 규제하는 이유는 규모의 파워를 통해 편법적으로 불공정행위를 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기업이든 자유롭게 기업활동을 하고 경쟁을 하되 규모가 작은 기업들이 대기업의 불공정행위로 인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공정거래법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현행 기준에 따른 65개 기업집단 중에서 적어도 중간 규모 이하에 해당하는 자산 10조원 이하의 기업집단에게는 굳이 필요치 않은 과잉 규제가 행해지고 있다. 신규로 기업집단에 진입하는 순간 무려 30여개의 규제법안을 추가로 적용받아야 한다. 우리는 기업들에게 요구하는 게 많다. 실적을 올려서 직원들에게 월급도 잘 주고 복리후생도 잘 해주어야 하고, 일자리 창출도 많이 해서 청년실업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투자도 많이 해서 경제도 살려야 하고, 배당도 많이 하도록 기업소득환류세제도 만들었다. 이를 위해 기업들은 열심히 뛰어야 하는데 각종 규제로 손발을 묶어 놓으니 4차 산업혁명시대에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핀테크 등과 같은 분야의 세계시장에 뻗어 나가기가 힘들다.

반면에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롯데와 같이 시장지배력이 엄청난 자산 100조원이상의 상위 5대 기업집단에 대해서는 규모에 걸맞는 제대로 된 규제를 못하고 있다. 이들 기업들이 불공정행위를 한다면 국가경쟁력이 흔들리고 나라의 미래가 위험해 진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주주의 편법적 지배력 강화나 탈법적 상속 증여행위, 그리고 독과점적 지위의 남용 및 담합 등의 행위는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집단의 기준을 자산 5조원이 아니라 자산규모 상위 20개 집단으로 정해 놓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래야만 대규모 기업집단에 대한 불공정행위를 보다 집중적으로 규제함으로써 다른 기업들의 경쟁력 강화를 도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부는 더 이상 남산2호터널의 속도제한을 40년 넘게 시속 40km로 묶어 놓은 것 같은 무책임 행정에서 벗어나 알파고를 탄생시킨 구글과 같은 기업들이 우리나라에서 탄생할 수 있도록 획기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김지홍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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