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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앤비전]기업은 망해도 산업은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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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윤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오동윤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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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검색으로 미국의 국제정치 전문지 '포린어페어' 1960년 10월호를 찾았다. 여기에 실린 기사다. '한국의 실업자는 노동인구의 25%, 1960년 1인당 국민총생산은 100달러 이하, 수출은 2000만달러, 수입은 2억달러이다. 한국의 경제 기적 가능성은 전혀 없다.'

한국은 기적을 만들었다. 경제발전학을 보면, 한국의 발전 사례가 곳곳에 있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이 쉽게 따라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시장경제를 훼손하는 정부의 규제도 있었다. 성장이라는 단일 목표를 위해 견뎌낼 만한 것이었다. 경제주체-가계(국민), 기업, 정부가 만들어낸 성장이다. 그 안에 절묘한 절제와 노력이 아우러졌다.
지금 한국 경제가 신통치 않다. 장년층은 과거 고성장을 경험했다. 그래서 지금의 저성장에 익숙하지 않다. 과거 아파트는 재산 형성을 도왔다.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골칫덩어리다. 물가상승률은 낮다. 지갑은 두툼해져야 한다. 그러나 지갑은 더욱 엷어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정부의 탓으로 돌리긴 어렵다. 정부의 역할과 정책의 기능이 과거와 같지 않을 뿐이다. 그만큼 우리 경제 규모가 커졌고 처한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기댈 언덕은 기업이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기업의 역할은 실로 경이롭다. 자못 뭉클하다. 경제개발을 주도했던 창업세대는 '한국을 잘사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사업보국의 정신으로 무장했다. 이게 그들의 기업가정신이었다. 오늘날 대기업이 한국 경제와 사회의 버팀목 역할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기업은 혁신을 부르짖는다. '한국 경제는 망해도, 삼성은 망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삼성이 허리띠를 바짝 조른다. 끊임없는 혁신과 투자를 하고 있다. 왜 삼성인가를 느끼게 해 준다. 이런 힘이 바로 '한국의 힘'이다. 그러나 이러한 혁신은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엷어진다. 게다가 혁신에 대한 이해도 미흡하다. 혁신의 대상을 제조 현장에 국한하는 경우가 많다. 혁신은 제품, 공정, 조직, 마케팅에서 모두 일어난다. 중소기업의 혁신을 살펴보면 제품과 조직 혁신은 높지만, 공정과 마케팅 혁신은 찾아보기 힘들다.
혁신이 미흡한 이유는 중소기업의 성장 과정에 있다.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납품을 통해 성장했다. 납품가격은 정해져 있다. 공정 혁신으로 원가를 절감하면 납품가격이 오히려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 공정 혁신에 큰 관심이 없는 이유다. 마케팅 혁신도 마찬가지다. 납품 거래처가 정해져 있으니 마케팅은 큰 의미가 없다. 얼마 전 삼성이 납품 기업을 초청했다. 과거와 같은 납품을 기대하지 말라고 친절히 알려줬다. 알아서 미리미리 준비하라는 얘기다. 외부 납품을 제한하던 과거와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기업은 망해도, 산업은 영원하다.' 1960년대 가발은 우리의 주요 수출품이었다. 산업의 중심이 빠르게 이동하면서 가발공장은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탈모로 인한 가발수요는 여전하다. 자전거도 그렇다. 과거 자전거는 유용한 교통수단이었다. 그러나 대중교통이 발달하면서 자전거 공장은 사라졌다. 지금은 레저붐이 일면서 자전거 산업이 부활했다.

그냥 돌고 도는 세상사쯤으로 봐선 안 된다. 인간이 존재하고, 신약이 개발되지 않는 이상 가발은 필요하다. 자동차가 없는 오지에서 자전거는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산업은 사라지지 않는다. 끊임없는 시장 개척을 통해 수요를 만들고, 혁신을 통해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단추 생산으로 수조 원의 매출을 올리는 선진국 중소기업이 있다. 수출과 혁신이 있기에 가능하다. 과연 한국에 단추 공장이 몇 개나 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정부지원은 성장보다 유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게다.

화장품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화장품은 전형적인 내수 품목이었다. 마케팅 수단도 방문 판매가 중심이었다. 게다가 국내 소비자는 해외 유명브랜드를 선호했었다. 화장품 산업의 돌파구는 수출이었다. 올해 9월 현재 화장품은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사상 처음이다. 중국, 동남아, 남미, 심지어 화장품의 본고장인 유럽까지 수출한다. 수출을 통한 마케팅 혁신이다.

이제 창업세대의 사업보국 정신은 도전적인 글로벌 기업가정신으로 바뀌어야 한다. 공정 혁신과 마케팅 혁신은 필수다. 산업은 사라지지 않는다. 혁신하지 못하는 기업이 사라질 뿐이다.

오동윤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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