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기적을 만들었다. 경제발전학을 보면, 한국의 발전 사례가 곳곳에 있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이 쉽게 따라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시장경제를 훼손하는 정부의 규제도 있었다. 성장이라는 단일 목표를 위해 견뎌낼 만한 것이었다. 경제주체-가계(국민), 기업, 정부가 만들어낸 성장이다. 그 안에 절묘한 절제와 노력이 아우러졌다.
기댈 언덕은 기업이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기업의 역할은 실로 경이롭다. 자못 뭉클하다. 경제개발을 주도했던 창업세대는 '한국을 잘사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사업보국의 정신으로 무장했다. 이게 그들의 기업가정신이었다. 오늘날 대기업이 한국 경제와 사회의 버팀목 역할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기업은 혁신을 부르짖는다. '한국 경제는 망해도, 삼성은 망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삼성이 허리띠를 바짝 조른다. 끊임없는 혁신과 투자를 하고 있다. 왜 삼성인가를 느끼게 해 준다. 이런 힘이 바로 '한국의 힘'이다. 그러나 이러한 혁신은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엷어진다. 게다가 혁신에 대한 이해도 미흡하다. 혁신의 대상을 제조 현장에 국한하는 경우가 많다. 혁신은 제품, 공정, 조직, 마케팅에서 모두 일어난다. 중소기업의 혁신을 살펴보면 제품과 조직 혁신은 높지만, 공정과 마케팅 혁신은 찾아보기 힘들다.
'기업은 망해도, 산업은 영원하다.' 1960년대 가발은 우리의 주요 수출품이었다. 산업의 중심이 빠르게 이동하면서 가발공장은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탈모로 인한 가발수요는 여전하다. 자전거도 그렇다. 과거 자전거는 유용한 교통수단이었다. 그러나 대중교통이 발달하면서 자전거 공장은 사라졌다. 지금은 레저붐이 일면서 자전거 산업이 부활했다.
그냥 돌고 도는 세상사쯤으로 봐선 안 된다. 인간이 존재하고, 신약이 개발되지 않는 이상 가발은 필요하다. 자동차가 없는 오지에서 자전거는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산업은 사라지지 않는다. 끊임없는 시장 개척을 통해 수요를 만들고, 혁신을 통해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단추 생산으로 수조 원의 매출을 올리는 선진국 중소기업이 있다. 수출과 혁신이 있기에 가능하다. 과연 한국에 단추 공장이 몇 개나 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정부지원은 성장보다 유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게다.
화장품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화장품은 전형적인 내수 품목이었다. 마케팅 수단도 방문 판매가 중심이었다. 게다가 국내 소비자는 해외 유명브랜드를 선호했었다. 화장품 산업의 돌파구는 수출이었다. 올해 9월 현재 화장품은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사상 처음이다. 중국, 동남아, 남미, 심지어 화장품의 본고장인 유럽까지 수출한다. 수출을 통한 마케팅 혁신이다.
이제 창업세대의 사업보국 정신은 도전적인 글로벌 기업가정신으로 바뀌어야 한다. 공정 혁신과 마케팅 혁신은 필수다. 산업은 사라지지 않는다. 혁신하지 못하는 기업이 사라질 뿐이다.
오동윤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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