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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광고학…'현수막'을 보면 정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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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광고학…'현수막'을 보면 정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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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홍유라 기자] '여러분 부자되세요' '침대는 과학입니다' '사람이 미래다'

광고 속 카피는 대중의 머릿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특정 제품 판매를 뛰어넘어 회사 브랜드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조성하는데 기여한다. 분야를 막론하고 천문학적 액수를 들여 '광고'를 하는 이유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팔아 표심을 얻어야 하기 때문에 일반 광고보다 더 심각한 고심을 거쳐 슬로건을 만들고, 현수막을 내건다. 이는 곧 당의 정체성과 정책 방향을 홍보하는 핵심 도구가 된다.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의 현수막이 줄줄이 늘어선 대로변을 보면 '정치의 광고학'까지 느낄 수 있다.
최근 새누리당은 '노동개혁 청년들에게 절실합니다' '노동개혁으로 청년에게 좋은 일자리를' '임금피크제로 자녀에게 일자리를' '공천권을 국민에게' 등 중앙당 차원의 정책을 담은 현수막으로 민심을 얻는데 주력하고 있다. 노동개혁 뿐 아니라 공천을 중심으로 한 정치개혁 등 당이 밀어붙이는 주제로 메시지를 채웠다.

이에 새정치민주연합의 대항마격 현수막 내용은 이렇다. '아버지 봉급을 깎아 저를 채용한다고요?', '청년일자리도 돌려막기 하십니까?' '부모에겐 고용안정 자녀에겐 새 일자리', '노동시간 지키면 청년일자리 생깁니다' 등 총 4가지다. 지난달 13일부터 내걸며 반격에 나섰다.

여야가 추구하는 광고 기조의 차이는 슬로건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먼저 여당은 '자기 논리'로 말한다. 정부여당에서 올 하반기 최우선 국정과제로 정한 노동개혁의 필요성과 장점을 강조한다. 가령 임금피크제가 청년 실업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식이다. 야당이 말하기에 앞서 정부여당에서 들고 나온 의제다. 당 관계자는 "상대방의 현수막과 상관없이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현수막에 담는다"고 귀띔했다.
반면 야당은 '비판 논리'가 주를 이룬다. 즉, 상대 논리에 대해 반박하는 선에서 그친다. 최근 새정치연합의 노동개혁 관련 현수막도 여당의 주장을 되받아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임금피크제가 청년에겐 별 도움이 안 될뿐 아니라 부모의 희생을 가져오게 된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대안보다는 해당 제도의 문제점을 강조한다.

야당 현수막 속 단어는 상대 진영 논리를 뒤집으려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네거티브 언어'의 나열로 흐르는 양상을 띈다. 지난 5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 정국 때도 새정치연합의 현수막은 '박근혜 대통령, 국민과 싸우지 말고 메르스와 싸우십시오!'였다. '메르스 극복 새누리당, 의료진 여러분 힘내세요 우리 대한민국이 응원합니다'를 내걸었던 새누리당 현수막과는 첫인상부터 180도 다르다. 유례없는 메르스 사태 속 공포에 휩싸인 시민들에게 '전투모드'로 무장한 야당과 '응원모드'로 격려하는 여당 중 무엇이 더 마음에 와 닿았을까.

일각에선 한국 정치권 내 야당의 구조적 한계가 현수막에서도 나타난다는 평이 나오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주체성'을 띈 여당과 그에 비해 '수동적'인 야당이란 분석이다. 때문에 야당에서 공을 들여 새로 영입한 손혜원 새정치민주연합 홍보위원장은 야당도 '자기 논리'를 내세우자고 주장했다. 새로운 현수막 하단에 '청년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재벌개혁입니다.'란 문구가 들어간 배경이다.

다만, 정치권의 현수막은 도시 경관을 헤치는 주범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지역 현안을 홍보하는 정치 현수막이 자취를 감췄다. 서울시에서 '불법 현수막과 전쟁'을 선포한 까닭이다. 김광수 서울시의회 의원이 공공기관에서 내건 현수막이 불법 현수막의 74%나 된다며 문제제기한 직후다.

김태기 서울시청 도시빛정책과 과장은 "김 의원의 지적 이후 시에서 단속을 강화하는 등 불법 현수막과 전쟁을 선포했다"면서 "우선 정당 및 행정 현수막의 불법을 근절시킨 이후 민간까지 추진해야 효과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그는 "중앙당에서 거는 현수막은 (당에서) 예민하게 반응하고, 정당에서 반발하는 측면도 있어 완벽히 단속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서울시는 정당 현수막과 관련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도 조만간 협조 공문을 곧 보낼 예정이다.

하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현수막은 1m, 1만원을 기준으로 제작된다. 한개당 8만원 꼴이다. 비용대비 효과가 높을 수 밖에 없다. 정치권이 현수막의 유혹을 벗어나기 힘든 배경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추석 민심 잡기로 마음이 다급한 정치권이 한 마디 문장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얻을 기회를 놓치기 원치 않을테니 말이다.



홍유라 기자 vand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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