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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래미안'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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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외국인 친구에게 한국의 주소를 알려주면 깜짝 놀라곤 한다는 얘기가 있다. 팰리스(궁전)나 캐슬(성) 같은 아파트 브랜드 때문에 “왕족이냐”고 묻는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아파트 브랜드가 일반화됐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현대아파트’처럼 건설사명이 곧 아파트 이름이었다. 2000년대 들어 삼성물산이 ‘래미안’을 내놓으면서 비로소 아파트 브랜드 시대가 열렸다. 이 때부터 아파트는 단순히 사는 집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의 표상처럼 치부됐다. 삼성이 초기에 광고 문구로 삼은 것이 바로 ‘당신의 이름이 됩니다’였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물질에 대한 욕망이 노골화돼 가는 시점에 아파트 브랜드를 동경의 대상으로 만들었고, 사람들은 그 '이름표'를 달기 위해 절치부심했다. 이후 롯데는 아예 대놓고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라고 광고했다. 롯데의 아파트 브랜드가 바로 캐슬이다.

'반도체 신화'처럼 한국에서 '아파트 신화'를 일구어온 것이 삼성이고 래미안이다. 그런 래미안의 미래를 놓고 최근에 말들이 무성하다. 삼성물산이 제일모직과 합병하면서 건설 사업을 접을 것이란 '카더라'성 추측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물론 삼성물산 측은 “말도 안 된다”고 펄쩍 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재편 방향을 보면 그런 추측이 나올 법도 하다. 그룹의 역량을 미래 성장성이 크고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한다는 전제로 봤을 때 건설업의 매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삼성은 세계 최고 수준의 휴대폰과 반도체에 더해 사물인터넷, 모바일 솔루션, 의료·바이오 등을 신성장 분야로 보고 있다. 반면 건설업은 최근 주택시장이 활황이지만 향후 지속성에 대해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삼성물산 스스로도 수주를 자제하고 있다. 해외 건설 역시 수익성 면에서 빛이 바래간다.

삼성물산 건설 부문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8%가량 줄어든 1000억원 규모다. 삼성전자의 상반기 영업이익 12조8773억원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한편으로는 걸핏하면 담합 등으로 과징금을 부과 당하고 각종 비리에 빠지지 않는 게 건설업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애플이나 구글 같은 첨단 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삼성 입장에서 달가운 이미지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당장 래미안의 종언을 논하는 것은 분명 섣불러 보인다. 삼성물산이 주택 부문에서만 이미 쌓아둔 수주 잔고가 13조원에 이르고 최근에는 9000억원 규모의 신반포 통합 재건축 사업을 수주했다. 서초동 일대 최고 알짜 중 하나인 무지개아파트 재건축 시공권 수주전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사업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내실있게 하겠다”는 게 삼성물산이 표방하는 바다.

그룹 공사 물량을 위해서도 건설업은 필요해 보인다. 대표적으로 세계 최대 규모인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 같은 공사를 다른 그룹 건설사에 맡길 수는 없는 일이다. 전자 산업은 보안이 생명이다.

보다 현실적인 이유는 합병 과정에서 겪었던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과의 분쟁이다. 힘들게 합병을 마무리지어놓고 또 다시 무리하게 건설 분야를 구조조정하려 했다가는 어떤 공격이 날아올 지 모른다.

다만 전환기를 맞은 삼성에서 건설업의 비중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삼성물산 건설 부문 직원 수는 올해 상반기에만 439명, 6% 가까이 줄어들었으며 향후 제일모직 건설 부문과 중첩되는 조직의 재편이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통일이라도 되지 않는 한 건설업의 전망은 밝지 않다. 중장기적으로 보면 이재용 부회장의 머리 속 바구니에 건설이 빠져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래미안이라는 이름은 '미래(來)의 아름답고(美) 안전한(安) 주거공간'을 의미한다. 정작 삼성물산 건설 부문의 미래는 아름답고 안전할까. 지금으로선 장담하기 어려워 보인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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