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빚으로 유명해진 남유럽의 상황에서 잘 드러난다. 먼저 시칠리아의 한 마을의 상황이다. 이 마을의 좋은 관광자원인 수도원이 하필이면, 혹은 당연히 벼랑 위에 서 있어 관광객이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승강기를 설치했다. 흔히 그렇듯이 관광산업진흥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준공식을 하면서 딱 한 번 운행을 하고는 멈춰 버렸다. 이 승강기의 설치에 유럽연합(EU)의 지역균형개발기금이 200만유로가 투입됐는데 그 운행과 관리, 보험 등에 소요되는 연간 10만유로를 인구 1400명의 작은 마을로서는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 마을도 적지 않은 지출을 하였는데, 이 눈에 빤히 보이는 결말을 왜 막지 못했는가 하는 의문은 투입된 기금 대부분이 지역 마피아의 수중으로 들어갔다는 데에서 쉽게 풀린다.
드디어 내년에는 우리나라의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GDP)의 40%대에 이른단다. 이 정도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낮다고 눙치려 하지만 우리나라는 GDP에서 국가재정이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OECD 국가들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단순비교할 일이 아니다. 더 걱정은 가계부채다. IMF사태 이후 이 나라를 지배한 신자유주의는 기실 기업의 부채가 가계로 이전되는 과정이었다. 금모으기 운동이 자발적이었고 보면 그 평가를 그리 단순하게 할 수는 없지만 정권을 이어 지금까지 소비를 늘리려 신용카드를 남발했고, 누구 말대로 부동산은 '10배 남는 장사'로 거품을 키워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부채질하는 베블런효과(과시 소비)는 덤이다. 덕분에 가계부채가 지난 3월 말 기준 1100조원에 육박했다. 그중 절반 이상이 주택담보대출이다. 과연 아파트를 계속 머리위에 이고 살 수 있을지, 이자율이 언제까지 고개 숙이고 떠받쳐줄지, 다들 민감하게 미국의 기준금리만 바라보고 있는데 정작 정책 당국이 빚내서 집 사라고 한 적 없다고 하는 것을 보면 'isch over'가 그리 멀지 않은 듯하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최민식의 독백으로 유명해진 윌콕스의 시구,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만 울게 될 것이다"는 이렇게 계속된다. "네가 건네는 달콤한 와인이야 그 누구도 마다하지 않지만, 삶의 신산은 너 혼자 들이켜야 한다… 좋을 때에야 장황한 인생살이 품어줄 여유가 있지만 고통의 협로는 너나할 것 없이 한 사람 한 사람 지나가야 한다." 열대야는 끝났지만 가을바람을 핑계로 불면의 밤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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