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 '생명의 다리' 철거 앞두고 … 자살예방협회 김현정 교수의 뼈있는 지적
국가 차원서 실질적 예방대책 절실
[아시아경제 장인서 기자] '내 인생의 봄날은 언제나 지금이다'(생명의 다리 문구 일부).
철거 소식이 전해지면서 삼성생명이 부담했던 연간 1억5000만원에 달하는 운영비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OECD 국가 자살률 1위라는 오명에도 불구, 자살 예방 정책과 예산 부담이 민간기업과 국민 개개인의 몫으로 떠넘겨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한국자살예방협회 대외협력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현정 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23일 기자와 만나 "이번 생명의 다리 철거는 국민들의 자살 예방 정책이 정부가 아닌 민간의 부담으로 떠넘겨진 대표적인 예"라고 못박았다.
생명의 다리는 서울시와 삼성생명의 협력 사업으로 2012년 9월에 설치됐다. 다리 난간에 동작인식 센서를 장착해 시민들이 다가오면 불이 들어오면서 '밥은 먹었어?' '무슨 고민 있어?' '오늘 하루 어땠어?'라는 문구가 뜬다. 그중에는 '다독거려주세요(체조선수 손연재)' 등 유명 인사들의 격려글도 포함돼 있다.
자살시도자에게 친근하고 따뜻한 말을 건넴으로써 위로를 주고 삶에 대한 의욕을 되살리겠다는 의도였지만 지나치게 감성적인 접근으로 지역 명소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때문에 서울시는 오는 26일까지 생명의 다리를 대신해 마포대교를 새롭게 단장할 아이디어를 공모 받는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공모하는 건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다리 하나 이렇게 저렇게 바꾸는 걸로는 국민들의 자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면서 "기업의 기부금이나 국민의 아이디어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예산을 편성해 자살시도자에게 실질적인 돌파구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다리 난간에서 뛰어내리지 못하도록 물리적인 방어막을 설치하고, 자살시도자의 고충을 금융권 등 유관기관과 협력해 현실적으로 풀어갈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김 교수는 "사회적으로 번아웃 증후군(탈진증후군)이 확산되고 노인 자살률 못지않게 40대 중년 남성의 자살률도 가파르게 증가하는 추세"라면서 "이처럼 당면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 예산 편성과 사회 지도자층과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모든 게 죽으면 해결된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을 경계하고 언론 역시 유명인사의 죽음을 미화하기 보단 비판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며 "자살 충동이란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불쑥 찾아오는 파도와 같다. 각자가 처한 상황을 들어주고 객관적으로 진단할 수 있게 제도적으로 도와주는 것만으로도 그 위기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을 맺었다.
장인서 기자 en130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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