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30년 은행 월급쟁이 은퇴 뒤 대부업까지…먹고살기 힘든 대한민국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30년 넘게 은행 월급쟁이로 살다가 퇴직하니 막막하더라고요. 돈 안 갚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채권추심도 해봤고 버스 네 다섯번 갈아타고 새벽 5시 반에 출근하는 골프장에서도 일해 봤지요. 그러다가 지인 소개로 대부업을 시작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네요."

예순을 훌쩍 넘긴 박정수(남·가명)씨는 수년전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에서 소규모 대부업을 시작했다. 은행 퇴직 후 여러 가지 '인생2모작'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돈만 까먹다가 결국은 돌고 돌아 익숙한 금융에 안착한 것이다. 처음에는 "고객 관리만 잘 하면 되겠지"라고 단단히 결심했지만 인생2모작에 나선 은퇴자들이 그렇듯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다. 치킨집이나 이동통신사 매장을 오픈했다가 말아 먹었다는 주변의 사연을 들을 때마다 과연 무엇이 정답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박씨처럼 직장에서 은퇴한 50세 이상 중·고령층은 70%가 서비스 부문에서 일하고 있다. 대표 업종으로는 치킨집이나 이통사 대리점이 있다. 문제는 지속 가능성이다. KB금융연구소의 최근 자료를 보면 전국의 치킨집 평균 생존 기간은 2년7개월에 불과했다. 단말기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 시행으로 보조금이 사라지면서 이통사 대리점들도 영업 환경이 척박해졌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부 은퇴자들은 대부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대부업은 다른 업종과 달리 운영비가 많이 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박씨도 열평 남짓한 작은 사무실에서 직원 없이 혼자 일한다. 그는 "지금은 손님이 뚝 끊겼지만 전에는 하루에 2~3명이 입소문을 타고 찾아왔다"며 "고객들은 성별과 나이가 천차만별이지만 저신용에 급전이 필요한 절박한 상황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담보대출을 위주로 영업하며 금리는 연 24%를 받는다. 그는 "우리 같은 (은퇴) 대부업자들은 독종이 아니어서 대형 대부업체들보다는 이자가 낮은 편"이라고 귀띔하면서도 대부업에 대한 당국의 규제가 강화되는 것에 대해서는 "문을 닫으라는 얘기지"라며 손사래를 쳤다.

최근 금융당국은 대부업의 최고금리를 29.9%로 낮추면서 방송광고도 제한하기로 했다. 게다가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면서 박씨처럼 소규모 대부업체들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개인 등록 대부업체는 지난해 말 7016곳으로 전년대비 604곳이 줄었다. 규모가 큰 법인 등록 대부업체가 같은 기간 1678개로 전년대비 28개밖에 줄지 않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대부업은 저신용자들에게는 제도권에 있는 마지막 금융 안전망이라는 점에서 이같은 업황은 시장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것이 박씨의 우려다. '그만둔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지만 당장 문을 닫기가 쉽지 않다. 회수해야 할 돈도 남아 있고 가족들도 신경이 쓰인다. 박씨는 "폐업을 할까 고민 중이지만 올해는 어떻게든 버텨볼 생각이다. 이 일이 인생의 마지막 직업이니 잘 마무리 하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포토] 오동운 후보 인사청문회... 수사·증여 논란 등 쟁점 오늘 오동운 공수처장 후보 인사청문회…'아빠·남편 찬스' '변호전력' 공격받을 듯 우원식,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 당선…추미애 탈락 이변

    #국내이슈

  • 골반 붙은 채 태어난 샴쌍둥이…"3년 만에 앉고 조금씩 설 수도" "학대와 성희롱 있었다"…왕관반납 미인대회 우승자 어머니 폭로 "1000엔 짜리 라멘 누가 먹겠냐"…'사중고' 버티는 일본 라멘집

    #해외이슈

  • '시스루 옷 입고 공식석상' 김주애 패션…"北여성들 충격받을 것" 이창수 신임 서울중앙지검장, 김 여사 수사 "법과 원칙 따라 제대로 진행" 햄버거에 비닐장갑…프랜차이즈 업체, 증거 회수한 뒤 ‘모르쇠’

    #포토PICK

  • 車수출, 절반이 미국행인데…韓 적자탈출 타깃될까 [르포]AWS 손잡은 현대차, 자율주행 시뮬레이션도 클라우드로 "역대 가장 강한 S클래스"…AMG S63E 퍼포먼스 국내 출시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한-캄보디아 정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수립 세계랭킹 2위 매킬로이 "결혼 생활 파탄이 났다" [뉴스속 용어]머스크, 엑스 검열에 대해 '체리 피킹'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