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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문인 윤선도의 진면목…정치에선 ‘대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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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 ‘고산유고’ 4권으로 번역, 고산 입체적으로 이해할 자료

[아시아경제 백우진 기자] “신하 된 자가 만약 나라의 권세를 한 손에 쥐게 되면, 자기의 복심(腹心)을 중요한 자리에 배치하여 위복(威服ㆍ상벌)의 권한이 자기에게서 나오게 할 것입니다. 설사 어진 자라도 이렇게 하면 안 될 것인데, 더군다나 어질지 못한 자가 이렇게 한다면 나라가 또한 위태롭지 않겠습니까. 지금 성상(聖上)께서 임어(臨御)하시어 군군신신(君君臣臣)하는 때이니 당연히 이와 같은 사람은 없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런데 신이 삼가 예조 판서(禮曹判書) 이이첨(李爾瞻)이 하는 짓을 보건대, 불행히도 여기에 근사(近似)하기에, 신은 삼가 괴이하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소박한 삶의 여유와 풍류를 노래한 ‘어부사시사’로 주로 알려진 고산(孤山) 윤선도(1587~1671)는 정치적으로 대나무처럼 곧은 자세로 일관했다. 이로 인해 그는 관직이 삭탈됐고 두 차례 유배됐다.
고산은 광해군 재위 시기인 1616년 성균관 유생으로서 권력자 이이첨을 위와 같이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는 이로 인해 함경도 경원에 이어 경상도 기장에 유배됐다.

고산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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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예법 문제로 상소를 올리려고 하자 동료가 그 소를 그만두도록 만류했지만 고산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처럼 벼슬에 연연해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서슴없이 펴는 모습을 떠올리노라면 표표히 강호로 떠나 중앙 정치를 잊은 채 바람 따라 물결 따라 지낸 고산의 풍모가 우리에게 더 입체적이고 생생하게 다가온다. 또 ‘외로운 산’이라는 호의 뜻을 다시 새기게 된다.

여기서 현대어로 옮겨진 ‘어부사시사’ 중 하사(夏詞)의 일부를 감상해보자. 어부사시사는 계절마다 10수씩 40수로 이뤄졌다.
궂은 비 멈춰가고 시냇물이 맑아온다/ 배 띄워라 배 띄워라
낚싯대를 둘러메고 깊은 흥이 절로난다/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지국총 지국총 어사화)/ 산수의 경개를 그 누가 그려낸고

蓮잎에 밥을 싸고 반찬일랑 장만 마라/ 닿 들어라 닿 들어라
삿갓은 썼다만는 도롱이는 갖고 오냐/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무심한 갈매기는 나를 쫓는가 저를 쫓는가

마름잎에 바람 나니 봉창이 서늘하구나/ 돛 달아라 돛 달아라
여름 바람 정할소냐 가는대로 배 맡겨라/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남쪽 개와 북쪽 강 어디 아니 좋겠는가

고산은 1623년 인조반정으로 유배에서 풀려났고 1628년에 별시 문과 초시에 장원급제하면서 중앙 관직에 진출했다. 인조의 신임을 받으며 봉림대군과 인평대군의 사부로 제수되고 주요 관직을 거쳤다.

인조반정에 공을 세운 원두표가 교만해져 제멋대로 굴자 고산은 인조에게 “원두표를 먼 외방에 한가히 머물게 하여 공신을 보호하는 도리를 곡진히 하소서”라고 상소를 올렸다. 이 때문에 그는 관직을 빼앗기고 한양 밖으로 추방됐다. 그는 고향인 해남으로 돌아갔다.

고산은 노년에는 인조 계비의 상례를 둘러싼 ‘예송논쟁’에 뛰어들어 우암 송시열에 맞서다 패배해 73세 때인 1660년 함경도 삼수에 우리안치됐다가 광양으로 이배됐다. 1667년 해남으로 돌아온 고산은 부용동에서 유유자적한 말년을 보내다가 1671년에 85세를 일기로타계했다.

정치인이자 시인인 고산의 진면목을 그가 남긴 글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 책이 나왔다. ‘고산유고’ 4권이다. 첫째 권에는 시 250여수가 주석과 함께 수록됐다. 둘째 권에는 소(疎)와 서(書)가 실렸다. 서는 안부 편지와 특정 사안을 문답으로 정리한 글이 많다. 셋째 권에는 다양한 산문이, 넷째 권에는 장편시와 부(賦), 논(論), 책(策) 등이 담겼다.

‘고산유고’를 번역한 이상현 한국고전번역원 교수는 “고산의 한시는 국문시가보다 분량이 훨씬 많고 내용도 매우 다양하고 풍부하다”며 “고산의 국문시가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한문으로 지어진 시를 이해하는 일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백우진 기자 cobalt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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