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의 기원은 확실하지 않다. 기원전 3000년경 인더스강 유역과 이집트 나일강가에서 목화를 재배하고 면직물을 입었다는 자료가 있다. 유럽에 면직물이 전해진 것은 A.D.800년경 아랍 상인들에 의해서지만 본격적인 전파는 1498년 인도항로가 열리면서부터였다. 신항로 개척이후 인도의 면직물은 서유럽에 면직물 돌풍을 일으켰다.
영국은 그 여세를 산업혁명으로 이어갔다. 1765년 와트가 발명한 증기기관이 면방적기와 직조기에 연결되면서 면직공업의 급성장은 물론 산업혁명에 불을 붙였다. 영국의 공장에서 대량생산 된 면직물은 다시 인도로 역수출 됐다. 면의 종주국 인도가 수입국으로 전락하는 아이러니가 빚어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찍이 면사를 수입해 면직물을 제직했던 것으로 추정되나, 고려말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숨겨 들여오면서 새로운 계기를 맞는다. 조선조 세종대왕의 장려로 면직물 생산이 더욱 늘어 이때부터 주된 의복재료가 됐다. 더불어 조세물품과 외국과의 주교역품으로서 더욱 중요시 됐으며, 임진왜란을 통해 일본에 면업을 전파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 중기부터 면포에 대한 조정의 조세수탈로 생산의욕이 꺾이게 된다. 세금수탈에만 열을 올렸을 뿐 품질 향상이나 기술개발 노력은 전혀 없었다. 투박한 광목만 만들어내야 했다. 질 좋은 수입 외국산 면포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역사는 면직물로 산업혁명을 성공시킨 영국, 소중한 자기 것도 지키지 못한 인도, 그리고 간특한 일본에 넘어간 조선을 보고 깨우치고 배우라고 소리친다.
송명견 동덕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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