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은행들 집·땅 짚고 헤엄치기
[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은행이 변했다. 현대 은행은 부동산펀드와 유사하다. 기업에 산업자금을 대주는 것은 더 이상 은행의 주된 역할이 아니다. 대부분의 자금을 주택담보대출이나 부동산 개발업에 공급한다." (오스카 조던 외 2명 '거대한 주택담보대출')
"주택담보대출은 경기가 좋아지면 값이 올라 담보가치가 높아진다. 돈을 빌려줄 여지도 커진다. 이런 현상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미국에서 자주 관찰됐다. (중략) 미국인들이 주택을 현금입출금기(ATM)로 착각했다는 소리까지 나왔다." (이흥모 한국은행 부총재보 '단숨에 배우는 금융' 314쪽)
지난해 10월 오스카 조던, 모리츠 슐라이크, 알렌 테일러 세 사람이 미국경제연구소(NBER)에 발표한 '거대한 주택담보대출'(The Great Mortgaging) 논문에 따르면 세계 주요국의 총 대출 중 주택담보대출 비율은 지난 십수년 동안 가파르게 증가했다.
17개 주요 나라(프랑스ㆍ이태리ㆍ호주ㆍ일본ㆍ스페인ㆍ영국ㆍ포르투갈ㆍ벨기에ㆍ네덜란드ㆍ캐나다ㆍ노르웨이ㆍ미국ㆍ스웨덴ㆍ독일ㆍ스위스ㆍ덴마크ㆍ핀란드)의 은행 총 대출 대비 주담대 비율은 1920년 28%에서 1970년 39%로 훌쩍뛰었고 2007년엔 55%까지 늘어 절반을 웃돌았다. 반면 같은 기간 기업금융과 주택담보대출 이외의 가계대출은 몸집이 쪼그라들었다. 1920년 72%이던 것이 1970년 61%로 떨어졌고 2007년엔 44.6%로 감소했다.
스위스는 1920년과 1970년에는 총 대출 중 주담대 비율 49%에서 2007년 87%로 늘었다. 노르웨이(29→36→68%)와 영국(16→52→63%)도 같은 기간 계단식으로 상승했다. 덴마크(52→59→60%)는 50~60% 사이를 움직였고 독일(49→42→51%)도 비교적 큰 변동은 없었다. 일본은 1920년 14%이던 주담대 비중이 1970년 7%로 줄었지만 2007년 46%까지 치솟았다. 프랑스는 같은기간 4→33→47%로 늘고 캐나다도 27%에서 30%로 상승했다가 2007년 51%까지 치솟았다. 17개국 중 스웨덴(44→81→ 59%)과 핀란드(55→44→43%)만이 총 대출중 주택담보대출이 차지하는 비율이 이례적으로 하락하는 흐름을 보였다.
논문은 "글로벌 위기를 예측하지 못했고, 위기가 오래 지속되는 이유를 몰라 학문의 위기를 맞고 있는 거시경제학의 핵심과제는 부동산 대출의 속성과 특징을 연구하는 것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우리나라에 대입하면 어떨까. 한국은행이 기획재정위원회에 발표한 업무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주택담보대출을 포함한 은행의 가계대출은 연중 37조3000억원이 늘었고 은행의 기업대출(개인사업자 포함)은 43조원이 증가했다. 제2의 가계부채로 불리는 개인사업자(자영업자) 대출을 빼면 은행의 기업대출 증가규모는 24조2000억원에 불과하다. 은행의 총 대출 중 기업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39%, 가계대출의 비중은 61%로 나타났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대출이 기업보다 가계중심으로 일어난다면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통해 돈을 푼다고 해도 통화정책의 유효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은행입장에서 주담대가 편한대출일지 몰라도, 전체적으로 집값이 떨어졌을 때 시스템적 리스크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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