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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아나키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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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재 사회문화부장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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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통해 수입된 외래용어들 중에 수정돼야 하는 것들이 많지만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용어 중의 하나가 '무정부주의'다. '아나키즘(anarchism)'을 번역한 이 말은 아나키즘이 본래 갖고 있는 의미, 즉 일체의 권위주의와 억압이 없는 사회의 추구라는 뜻을 전달하지 못하고 있는 건 물론 오히려 '무정부'란 말에 의해 '무질서', '혼란'의 조장이라는 오해를 갖게 하고 있다.

아나키즘의 이상과 가치는 고드윈이나 크로포트킨 등 아나키스트들의 고결한 삶에서도 드러나고 있지만 실은 우리의 민주주의 제도에는 이미 아나키즘의 원리가 상당 부분 수용돼 있다. 민주주의의 중요한 축인 권력의 분산과 견제 제도들에는 아나키즘의 원리가 일정 정도 구현돼 있는 것이다.
아나키즘이 얘기하는 것은 결국 능동적ㆍ주체적 개인들이 만드는 자유로운 공동체다. 개개인이 자기 삶과 공동체의 주인인 그런 개인들이 곧 아나키즘의 목표이고 조건이다. 또 그런 인간들로 만드는 것이 곧 아나키즘 실현의 과정이다.

그 같은 주인으로서의 개인을 가능케 하는 것은 철저한 자기각성이다. 그것은 불교의 수행덕목인 6바라밀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제시되는 '지혜', 즉 '무명(無明)'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탈(脫) 무명'은 부처가 죽음을 앞두고 제자 아난다에게 말했듯 철저한 자기주체화로써 가능한 것이다. "지금에 있어서도 또한 내가 죽은 뒤에 있어서도 스스로를 등명(燈明)으로 삼고 스스로를 의처(依處)로 삼을 것이지 남을 의처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서 민주주의의 약점이 드러난다. 지금의 대의민주주의는 '대의'라는 말이 내포하고 있듯 국민 스스로가 주체가 되기보다는 자신의 의사결정을 남에게 위탁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결국 자기 자신을 대상화시키는 함정이 있다. 민'주'(民'主')가 민'객'(民'客')이 돼버리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 정치의 현실은 이 괴리와 전도가 극단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고권력자들의 무책임과 무능, 그러나 그럼에도 그런 대표들을 선출해주고 지지를 보내는 '주인들의 무명(無明)'은 민주주의의 퇴폐를 보여주고 있다. 주역의 건(乾)괘는 '무수(無首)하면 길(吉)하리라'고 말하고 있다. 무수는 거꾸로 곧 전수(全首)다. 모두가 스스로 우두머리이며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무수-전수사회', 그것이 결국 민주주의의 목표가 아니겠는가. 우리에겐 지금 아나키즘이 필요해 보인다.





이명재 기자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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