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100인 지상송년회…올해의 인물 '박근혜'
#1. 1984년 5월29일 영국 남요크셔의 오그리브 코크스 공장. 탄광 파업노조 시위대 5000명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다. 시위가 격해지자 군중은 돌멩이를 던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기마대가 튀어 나가 시위하는 대열 속을 밟고 지나갔다. 이날 집회로 69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튿날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는 인터뷰에서 "어제의 시위는 법치(the rule of the law)를 '떼치(떼治·the rule of the mob)'로 바꾸려는 소행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포클랜드에서는 외적(아르헨티나)과 싸웠지만 지금은 내적(內敵)과 싸우고 있다"고도 했다.
공교롭게도 영국은 철도민영화의 몸살을 앓았다. 대처는 영국을 재생시키는 행동원칙으로 국민의 자구노력과 철저한 경쟁원리를 내세웠다. 그녀의 후계자였던 존 메이저 총리는 1993년 철도를 민영화했다(공기업 민영화에 적극적이었던 대처는 철도만은 민영화를 반대했다는 얘기도 있다). 이후 잇단 열차충돌 참사가 일어났는데, 민간 철도기업이 비용을 아끼려고 자동 안전장치를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철도노동자는 15만9000명(1992년)에서 9만2000명(1995년)으로 줄었다. 민영화는 화물과 승객 운송을 민간 사업자에 넘기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철도사업권은 100여개 기업으로 쪼개져 매각됐다. 2509개의 역사와 철도망을 관리하는 레일트랙은 1996년 가장 늦게 민영화됐는데 2000년에 열차탈선 사고가 일어난 뒤 다시 공영화됐다.
민영화의 효과에 대한 논란이 아직도 진행 중인, 영국의 사례가 최근 한국에 떠돈 '민영화 괴담'의 한줄기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안티-대처'라고 할 수 있는 영화감독 켄 로치는 철도민영화 이후의 고통을 담은 영화 '내비게이터(2001년)'를 내놨는데, 최근 국내 상황과 맞물려 이 영화를 찾는 이가 많아졌다고 한다. 로치는 철의 여인이 눈감은 날, 이런 독설을 남겼다. "대처의 장례식을 민영화하자. 경쟁입찰을 붙여 가장 싼 업체에 맡기자. 대처 본인이 원한 것도 바로 그런 방법일 것이다." 지난 27일 수서발 KTX 자회사의 사업면허를 발급함으로써 정부는 철도노조와의 타협 여지를 없애버렸으나 오늘 국회 '철도소위'에 합의하면서 파업을 일단 세웠다. 박근혜정부는 영국의 역사적인 궤적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2013년을 마감하면서 아시아경제는 100인의 뉴스인물을 모시는 '지상송년회'를 벌이기로 하였다. 그중에 '올해의 인물'로 박근혜 대통령을 뽑았다. 당선 1년을 넘긴 세밑에 돌아보는 '대한민국 경영자'로서의 그녀의 길을 음미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 땅에서 여성대통령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외롭고 높고 쓸쓸한 자리에서, 한 해의 격랑을 헤치고 달려온 그녀를 이 넓고 중요한 지면에 모셔서, 다시 내년의 희망과 이 땅의 미래에 대한 기대(期待)의 장으로 삼는다.
이상국 편집부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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