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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이빈섬의 '관세음(觀世音)'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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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해졌어, 요즘 내 눈에 소리가 보여./소리의 이마가 보이고, 소리의 몸통이 보여./소리의 코끝과, 소리의 뒤통수가 보이기 시작했어./소리가 풍덩 침묵에 빠지는 소리/소리가 철썩 침묵에서 터져나오는 소리/소리가 소리를 끌어모아 울퉁불퉁한/소리가 되는 소리/꿈틀꿈틀하는 소리가 되는 소리/그런 게 다 보여./물소리는 작은 벌레같이 움직여./고개를 갸웃거리며 젖은 발을 움직여/나뭇잎과 나뭇잎 사이로 걸어다녀./혼자 샤워하는 소리는 바다가 주저앉는/풍경같아, 어두워오는 등대 앞에서/가만히 무릎을 꿇는 바람의 머리칼같아/(……)/창문을 넘어오는 저녁 새소리는/핼쓱한 여자가 암자에 앉아서 홀로 먹는/김밥같이 생겼어. 오물오물 먹고나면 나무젓가락과 함께/비닐에 돌돌 싸서 버리는 그 작고 외로운 식사처럼/지저귀는 어떤 소리는 창문을 감돌다 그냥 돌아가버리지./왜 모든 소리는 들여다 보면 슬픈 걸까./귀밥을 파는 소리의 이야기는 왜 다들 슬픈 걸까./떨어져 살던 아내가 올라와 밥 짓는 소리는/왜 저리 눈앞이 캄캄한 걸까./이별 앞에서 후두둑 지는 벚꽃처럼/왜 어떤 소리는 익숙해지지 않는 걸까./왜 소리들이 밤중에 떨어지는 비처럼/사물거리는 걸까.

이빈섬의 '관세음(觀世音)' 중에서

 
■ 관세음이란 말의 뜻을 그대로 풀면 '사람들의 소리를 본다'는 의미다. 귀로 들어서 이해했던 소리들이 가끔은 얼마나 많은 오해를 부르는가. 우리는 끊임없이 말을 듣지만, 자기 생각하는 대로 듣기 일쑤이며 듣고나서 자기 멋대로 생각하기 일쑤이다. 말이 지닌 그 깊고 고즈넉한 풍경을, 가만히 바라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 때문이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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