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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옥인동 박노수 가옥이 미술관 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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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소년', 화선지에 수묵담채, 1987년, 135x66㎝

'달과 소년', 화선지에 수묵담채, 1987년, 135x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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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하, 화선지에 수묵담채, 1980년, 179x97㎝

류하, 화선지에 수묵담채, 1980년, 179x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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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절제된 운필과 파격적 색감으로 한국화의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재탄생시킨 거장. 고(故) 남정 박노수 화백(1927~2013년)의 가옥이 미술관으로 문을 열었다. 박 화백이 생전 40년 동안 직접 거주하면서 작업하던 공간에서 그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게 됐다.

11일 가을 단비가 내리는 날 '박노수 미술관' 개관전을 찾았다. 서울 종로구 옥인동에 위치한 박노수 가옥은 최근 복원된 수성동 계곡과 통인시장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인근의 서촌과 경복궁 주변으론 미술관과 갤러리가 즐비하다.
최초의 종로구립미술관으로 탈바꿈한 그의 집 문을 들어서면 빨간색 2층 벽돌집이 오른편에 서 있다. 아담한 정원엔 엄나무, 향나무, 살구나무, 매화나무 등 각종 나무들과 다양한 산수 모양의 수석들, 석등이 정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박 화백의 '사색의 순간'이란 작품에 담겨진 백모란의 실제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집 입구 계단을 올라 집안으로 들어가면 홍송으로 만들어진 마룻바닥과 노란 장판이 박 화백이 지냈던 공간 그대로의 모습이다. 1층에는 주로 자연을 배경으로 소년이 홀로 등장하는 그림들을 볼 수 있다. 박 화백의 대표작 '달과 소년'도 그 중 하나다. 왼쪽으로 기울어진 초승달, 한들한들거리는 버드나무 아래 앉은 소년은 뭔가 생각에 골똘히 잠겨 있다. 소년 옆에는 말 한마리가 역시 생각에 잠겨 있고, 세상은 온통 회색과 쪽빛으로 물들어 있다. 또 다른 작품 '류화(柳下)'에서는 강렬한 파란색을 입힌 버드나무 잎들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고 나뭇잎들 사이로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한 소년이 서 있다. 역시 나뭇잎 사이로 달이 보인다.

"동양의 산수화는 자연의 재현이 아니고, 무한히 생동하는 작가의 세계를 희구하는 것이며 작가는 그림 속 산수에서 노닐고자 한다"고 했던 생전의 작가의 말처럼 그림 속 소년은 사색을 즐겼던 작가 자신의 투영이었다.
 
숭산은천, 화선지에 수묵담채, 1970년대 초반, 34.8x34.8㎝

숭산은천, 화선지에 수묵담채, 1970년대 초반, 34.8x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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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인물 드로잉 작품을 보며 나무계단을 올라 2층으로 향했다. 아담한 다락방과 화실 겸 서재로 썼던 방, 침실이 있다. 박 화백의 독특한 산수화가 펼쳐져 있는 전시공간이다. 베란다와 서양식 벽난로도 보인다. 그의 막내딸이자 이 미술관의 학예사인 박이선씨는 "햇빛이 쏟아지는 이곳의 창문을 열어 정원을 내려다보며 화탁에 서서 그림을 그리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며 "평생에 걸친 산수화 작업은 산을 사랑해 가까이 두고자 했던 작가의 마음과 닿아 있다"고 소개했다. '유록(遊鹿)', '숭산은천(崇山隱天)' 등 이곳에서 보게 되는 그의 산수화는 산을 붉은색과 파란색으로 꾸며 강렬하게 표현한 반면 주변은 담백하게 색을 입혀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림에서 알 수 있듯 박 화백은 전통적인 소재를 취하면서도 간결한 운필과 강렬한 색감, 대담한 터치로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한 작가로 '전통에서 현대적 미감을 구현해 낸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박노수 화백 집 앞뜰 모습

박노수 화백 집 앞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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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별세한 박 화백은 2011년 1월 종로구에 자신이 평생 천착해온 화업 전부와 그의 가옥, 정원 그리고 소장해온 다양한 고미술품과 골동품 등 1000여점을 종로구에 기증했다. 특히 그의 가옥은 1937년 건축가 박길룡이 지은 집으로, 서울시문화재자료 1호이기도 하다. 조선말기 관료이자 친일파 윤덕영이 그의 딸을 위해 마련했다고도 전해지는 이 집은 벽돌 몸체와 지붕기와, 서양식 창 등으로 한국식과 서양식이 절충된 건축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종로구는 이번 구립미술관 개관을 위해 구청 내에 박 화백의 기증품을 보관할 수 있도록 항온ㆍ항습ㆍ보안 기능을 갖춘 수장고를 마련해뒀다. 앞으로 구는 박노수미술관과 함께 주변 '윤동주 문학관', 겸재정선의 장동팔경첩 중 '수성동' 그림의 배경이 된 '수성동 계곡', 한옥마을, 골목, 공방과 갤러리 등을 연계한 프로그램들을 계획 중이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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