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흑색 도자기 사발의 입은 직사각형 모양이다. 둥근 원형을 벗어나 각을 진채 선이 울퉁불퉁하다. 사발 안에 찍어 넣은 무정형의 작은 홈들이 보인다. 무작위로 만들어 넣은 이런 굴곡은 이곳저곳 빛을 만들어내고 있다.
정충미 작가의 '살고 있는 공간'이란 작품이다. 물레로 빚어낸 도자기가 다시 해체돼 무정형의 굴곡과 선을 지닌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한다. 정 작가는 끊임없이 정형화된 도자기의 형태에서 자연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순환'을 표현해내고 있다. 현대 작품이지만 마치 오래된 유물처럼 느껴지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일까.
국내에서 현대도예문화원장으로 활동 중인 그는 "흙은 나에게 모태의 의미를 담고 있는 대지이며 우주"라고 말한다. 그의 작품들은 '물질성'과 함께 '즉흥성', '우연성'을 담고 있다. 작가는 이 개념들을 '생성, 대지, 자연 직관'과 등치시킨다.
그는 전통기법의 물레로 기본 틀을 제작하고 무의식의 발로로 그 틀을 붕괴하는 과정을 통해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정 작가는 "우연한 행위에서 나타난 형상이 새로운 미적가치를 갖는다"고 이야기 한다. 제작도구로 사용하는 칼의 일종인 '묘침'으로 무작위로 구멍을 뚫는 것은 '에너지'를 분출하는 형상을 자아낸다. 작가는 "제작하는 순간의 자가 행위에서 우연성도 포함하지만 음양의 효과에서 빠져드는 블랙홀과 분출된 에너지를 동시에 느끼게 하는데 그것은 대지에서 일어나는 생멸(生滅)의 자연현상을 구멍 난 대지의 모습으로 보여 준다"고 설명했다. 문의 02-546-3057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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