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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아우토반과 창조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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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철 부국장 겸 금융부장

이의철 부국장 겸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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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일로 찾은 독일의 첫 숙박지는 프랑크푸르트의 한국인을 상대로 하는 민박집이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40여년 전에 간호사로 독일로 온 뒤, 광부로 일하던 한국 남자를 만나 결혼한 분이었다. 전형적인 파독광부와 간호사의 만남이었다. 일흔살이 가까운 연세인데, 50대 초반처럼 보이는 해맑은 얼굴이었다. 우리 일행에게 늦은 저녁을 차려주면서 한국 소식을 궁금해 하길래 "놀랍도록 발전했지요" 하니까, "젊은 양반, 그런 발전 뒤에는 우리처럼 해외에서 고생하고 희생한 사람들의 땀이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라고 했다.

이 분에겐 뭔가 울컥한 게 있었던 거다. 주인 아주머니는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해서 눈물을 쏟았던 얘기, 그 딸이 대통령이 되기 전(당 대표 시절이었다)에 프랑크푸르트를 방문해 교포들과 아버지의 추억을 나눴던 얘기까지 조근조근 해주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도 같은 계획 경제를 주도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 마침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돼서 '창조경제'를 한국경제 재도약의 화두로 하고 있음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하지만 창조경제든 무엇이든 그 명칭이야 어떻든 그게 무슨 상관이랴. '꿩 잡는 게 매'라고 대한민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정부가 내세운 창조경제의 방향성은 옳고, 시대적 흐름과도 맞다고 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창조경제'를 정부가 주도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공무원이 스스로를 창조경제의 주역으로 착각하거나, 창조경제를 이끌어가는 컨트롤 타워로 자처하는 한, 단언컨대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는 헛다리만 짚게 될 것이다.

언젠가 모 정책 관련 부처가 야심차게 준비한 보도자료 제목이 "창조경제 달성을 위한 ○○○○" 였던 것을 보고 실소한 적이 있다. 솔직히 말해서 그 보도자료 내용과 창조경제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기 때문이다. (보도자료를 만들기 위해 고생한 공무원의 명예를 생각해서, 또 창조경제를 수식어로 붙인 유치함은 그 공무원과 아무런 관련이 없기에 해당부처의 실명은 밝히지 않겠다.)
정부는 창조경제의 주체가 될 수도 없고, 되려고 해서도 안 된다. 그 욕망을 자제하는 게 창조경제 성공의 관건이다. 정부는 언제까지나 조력자로 남아야 한다. 창조란 기본적으로 민간이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 정부가 민간의 경쟁자로 나선다면, 민간에선 정부와의 경쟁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정부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그 어느 쪽도 '창조'와는 거리가 멀다.

정부는 민간의 창조활동을 섣불리 지원해서도 곤란하다. 세계적으로 뒤처지지 않는 탄탄한 중소기업 지원정책을 갖출수록, 중소기업 경쟁력이 약화된다는 '역설'을 기억해야 한다. 무엇보다 창조경제의 단기간의 성과에 집착해선 안 된다. 나무를 빨리 자라게 하겠다고 뿌리를 잡아당기면 그 나무는 죽고 만다. 창의란 원래 여유와 잉여에서 나온다. 후대에까지 보존되는 창의적인 예술작품의 상당수는 당대 왕족이나 귀족의 사치와 잉여에서 배태되지 않았던가.

되새겨봐도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의 행태를 보면 창조경제의 미래는 그다지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공무원들은 전 정권과의 차별화를 위해, 또는 대통령의 심기 의전을 위해 무조건 '창조'를 갖다 붙이기만 하면 '창조경제'가 되는 걸로 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창조적인' 대학입시제도이며,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를 '창조적'으로 재통합한 새로운 정책금융방향이다.

다시 독일 얘기로 돌아가보자. 아우토반을 차로 달리며 속도제한이 없는 아우토반이라는 인프라가 독일의 자동차산업에 미친 영향을 생각해봤다. 정부가 할 일은 아우토반이라는 인프라를 만들고, 속도라는 규제를 없애는 것 아닐까 하고.

영국 수학자 알프레드 화이트헤드는 "보통 교사는 지껄인다. 좋은 교사는 잘 가르친다. 훌륭한 교사는 스스로 실천한다. 위대한 교사는 가슴에 불을 지른다"고 했다. 민간의 창의성에 불을 지르는 위대함을 박근혜 정부에 기대해본다.






이의철 정치경제부장 겸 금융부장 charl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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