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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태휘 리야드 일기<1> "중동 진출, 돈이 전부는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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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신문이 시작하는 곽태휘의 '리야드 일기'. 우리에게 낯선 사우디 아라비아 및 중동 프로축구에 대한 살아있는 이야기를 담을 예정이다.[사진=정재훈 기자]

아시아경제신문이 시작하는 곽태휘의 '리야드 일기'. 우리에게 낯선 사우디 아라비아 및 중동 프로축구에 대한 살아있는 이야기를 담을 예정이다.[사진=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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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곽태휘입니다. 제가 이런 걸 해도 되나 모르겠네요. 처음 '중동 일기'를 제안받았을 때 망설여진 게 사실입니다. 공격수처럼 주목받는 포지션도 아니고, 유럽 빅리그에서 뛰는 것도 아니니까요. 중동 프로축구는 한국에 중계도 되지 않고, 인터넷 정보조차 없어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전 말주변도 없는데….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제가 이곳에서 겪은 경험담이나 소소한 일상이 여러분께 흥미로운 얘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마음을 바꿨습니다. 처음엔 부족한 점도 많겠지만 열심히 써볼 테니 많이 응원해주세요. 하하하.

오늘은 제가 뛰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리그와 알 샤밥이란 팀에 대해 간단히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아, 그보다 중동행을 선택한 계기부터 말씀드려야겠네요. 알 샤밥에 1월에 입단했으니 어느덧 8개월이 지났군요. 지난해 울산 현대에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우승까지 차지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던 제가, 돌연 사우디 리그로 간 것에 의아했던 분들이 많이 계신 걸로 압니다.
고민이 많았습니다. 중동으로 떠나는 선수들에 대해 '돈 때문에 간다'란 비난 어린 시선을 보내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그 점이 꽤 큰 몫을 차지했습니다. 이제 프로선수로서 뛰어온 시간보다 남은 시간이 훨씬 적으니까. 미래를 생각하면 금전적 부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아시아 정상에 오른 뒤, 여러 중동 팀으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적잖은 나이에 낯선 해외 리그로 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가족도 있고. 더구나 중동은 문화적으로도 차이가 큰 곳이니까요. 한국에 있으면 은퇴할 때까지 큰 어려움 없이 뛸 수도 있을 테고요. 고민하던 와중에 문득 '내가 지금이 아니면 해외 무대를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가 앞으로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1년 간 J리그(교토 상가)에서 뛴 적이 있지만, 커리어의 대부분은 K리그에서 보냈습니다. ACL 우승으로 어느 때보다 다른 나라 팀들이 절 관심 있게 지켜봤고요. 이번뿐이란 생각이 드니, 의외로 결정은 쉽게 내려지더군요.

사우디,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등 여러 나라 클럽에서 오퍼가 왔습니다. 그중에서 사우디 리그 그리고 알 샤밥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리그와 팀의 수준입니다. 요즘 카타르가 떠오른다고 해도, 중동에서 가장 강한 리그는 역시 사우디죠. 또 알 샤밥(우승 6회)은 알 힐랄(13회), 알 이티하드(8회) 등과 함께 리그 최고 명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올해 ACL 티켓도 확보한 상태였고요. 이 정도 팀과 리그라면 축구 선수로서 기량을 갈고 닦는 데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연봉을 주겠다는 팀들의 유혹도 뿌리치고 알 샤밥을 선택했습니다.
"사우디 입국 당시 예상치 못한 홈 팬들의 환영에 표정부터 얼떨떨하네요."[사진=알 샤밥 홈페이지 캡처]

"사우디 입국 당시 예상치 못한 홈 팬들의 환영에 표정부터 얼떨떨하네요."[사진=알 샤밥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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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리야드 공항에 내렸을 때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냥 구단 직원 몇 명이 나와 있으려니 했는데, 많은 취재진과 팬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더군요. 토요일 아침인데도요. 중동의 토요일은 우리로 치면 월요일처럼 한 주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심지어 비행기는 한 시간가량 연착까지 했습니다.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렸을 텐데 팬들은 반갑게 다가와 환영인사에 악수를 건넸습니다. 선물을 주시기도 했고요. 좀 얼떨떨하면서도, '중동 사람들이 축구를 정말 좋아하는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듣고 보니 이 정도는 약과라고 하더군요. 알 힐랄 같은 팀에 외국인 선수가 오면 공항이 마비가 될 정도라네요. 알 힐랄은 예전에 (이)영표 형, (설)기현 형, (유)병수가 뛰었던, 사우디에서 가장 인기 있는 클럽이에요. 전 국민의 절반가량이 알 힐랄 팬이라고 보시면 돼요. 원정경기에서도 홈팀보다 더 많은 서포터스가 관중석에 들어찰 만큼 국민 클럽이죠. 그 다음으로 알 나스르와 알 이티하드 등이 인기가 있습니다.

알 샤밥은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닙니다. 알 힐랄, 알 나스르와 같이 수도인 리야드를 연고지로 하고 있는데도요.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원래 가장 먼저 리야드에 생긴 팀이 알 샤밥이래요. 그런데 어떤 문제가 있어 알 샤밥에 있던 몇몇이 떠나 알 힐랄을 창단했다고 합니다. 이후 알 힐랄이 승승장구한 반면, 알 샤밥은 꽤 오랜 기간 고전했답니다. 자연스레 알 힐랄은 전국적인 클럽이 됐고 알 샤밥은 한동안 대중에게서 잊혔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두 팀 모두 리그에서 손꼽히는 강호지만, 팬의 규모에선 확실히 차이가 납니다.

처음 여기 올 때 가장 걱정한 건 날씨였어요. 대표팀 시절 중동에 오면 늘 고생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더군요. 매일 생활하고 운동하다 보니 나름 적응이 됐습니다. 물론 덥긴 더워요. 1월에도 우리나라 늦봄 정도 날씨였고, 6~8월 한낮에는 기온이 50도까지 오릅니다. 햇볕은 따갑다 못해 아플 정도입니다. 워낙 건조해서 땀도 안 납니다. 정확히 말하면 땀이 나기도 전에 말라버립니다. 실내는 에어컨 등 냉방시설이 기막히게 잘돼 있어 문제 없지만, 낮에는 거의 외출을 안 합니다.

"낮 시간엔 밖이 너무 더워 야외 훈련은 할 수 없고, 이렇게 실내에서 주로 워밍업을 하곤 합니다."[사진=알 샤밥 홈페이지 캡처]

"낮 시간엔 밖이 너무 더워 야외 훈련은 할 수 없고, 이렇게 실내에서 주로 워밍업을 하곤 합니다."[사진=알 샤밥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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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습도가 낮은 만큼, 해가 지고 나면 운동하기가 나쁘지 않아요. 한국에선 보통 오후 1~5시에 팀 훈련을 하는데, 여기선 오후 5시는 넘어야 운동을 시작할 수 있어요. 당연히 경기도 대부분 밤늦게 열립니다. 한국으로 치면 거의 저녁이나 새벽에 뛰는 격이어서, 그건 좀 적응이 필요하더군요.

중동 리그의 수준을 낮게 보시는 분들이 계실 텐데, 제가 느낀 바로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사우디는 중동에서도 알아주는 리그입니다. 외국인 선수들의 수준이 K리그보다 더 높고, 자국 선수들은 기본적으로 좋은 기술을 갖췄습니다. 한국에선 중동에 진출한 선수들의 기량 저하를 걱정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선수는 어디에서 뛰든 결국 스스로 어떻게 관리하고 노력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봅니다. 영표 형이나 기현 형도 여기서 뛰었지만 그 이후에도 잘했잖아요? 저만 해도 당장 팀의 리그-ACL 우승은 물론, 나아가 내년 브라질월드컵 출전을 바라보며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다양한 선수들을 상대하며 수비수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한 측면도 있습니다. 중동에서 뛰는 것 자체에 너무 선입견을 갖고 보지 않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브라질월드컵에 곽태휘가 꼭 필요하다'란 말이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사진=정재훈 기자]

"'브라질월드컵에 곽태휘가 꼭 필요하다'란 말이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사진=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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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얼마 전 9월 초 A매치 평가전을 치를 대표팀 명단이 발표됐죠. 저도 홍명보 감독님이 오신 뒤로는 처음 대표팀에 뽑혔습니다. 기쁜 만큼 각오도 남다릅니다. 선수 명단을 보니 제가 나이가 제일 많더군요. 어린 선수들에게 먼저 솔선수범을 보이고, 본받을 만한 점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홍 감독님 밑에서 처음 뛰는 만큼, 감독님이 원하는 축구와 제게 원하시는 점을 빨리 파악해야겠습니다. 물론 운동장에서 제대로 된 플레이를 보여드리는 게 가장 중요하겠죠. 감독님께서 기자회견에서 저에 대해 하신 말씀을 봐도,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저 스스로 꼭 월드컵에 나가고 싶은 마음만 앞세우기보다는, '곽태휘는 대표팀에 꼭 필요한 선수다'는 말을 듣도록 하겠다는 각오입니다.

9월2일 오후쯤 인천공항에 도착할 텐데, 설레고 기다려지네요. 곧 A매치를 통해 만나 뵙고, 일기로도 자주 인사드리겠습니다. 많이 응원해주세요.

*이 일기는 곽태휘의 직접 구술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전성호 기자 spree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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