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센터 나눔부엌…각자 준비한 음식 먹으며 이웃과 소통
지난달 28일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서울시립 청소년직업체험센터(하자센터). 마흔명 남짓한 사람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점심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식탁에는 각자 준비한 반찬이 '진수성찬'으로 차려졌다. 지난 6월부터 시작된 '나눔부엌' 현장이다.
나눔부엌은 각자 반찬을 한 가지씩 준비해와 나눠 먹는 형태로 진행된다. 집에서 음식을 만들기 어려운 사람은 하자센터에서 제공하는 부엌을 이용해 음식을 만들 수도 있다. 시간이 없다면 식재료나 과일을 가지고 와도 된다.
황윤옥 하자센터 부센터장은 "음식을 나누며 다른 사람을 알아가는 것이 예전엔 자연스러웠는데 요즘은 어려워졌다"며 "매주 수요일 점심 때 나눔부엌에 가면 나눠 먹을 음식이 있고 나눌 사람도 있는 편한 장소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의 인기 메뉴 중 하나인 잡채를 준비한 서정현(23)씨는 공정여행 분야 사회적 기업인 '트래블러스 맵'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평소에 인스턴트식품을 가져왔었다는 서씨는 이번엔 더 맛있는 음식을 나누려고 이모에게 부탁해 잡채를 준비해왔단다.
바쁜 출근 시간을 쪼개 음식을 준비해온 이도 있다. 하자센터에 입주해있는 사회적기업 '위누'에서 일하는 정윤주(32)씨는 감자채볶음을 가지고 나눔부엌을 찾았다. 정씨는 "나눠먹을 음식을 만들기 위해 평소보다 30분 일찍 일어났다"며 "늘 같은 사람들과 점심을 먹는데 여기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나눔부엌은 인근 동네 엄마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엄마들은 나눔부엌에서 동네 엄마들과 육아의 힘든 점을 나누고, 함께 온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동네 어른들과 어울려 소통하는 법을 배운다.
세 아이의 엄마인 이종은(42·주부)씨는 "아이들과 음식점에서 밥을 먹으면 돈을 내고 먹어도 불편한데 여기는 아이들이 무척 편하게 생각한다"며 "같이 식사를 하면서 아이들이 나눔의 의미와 식사예절을 배우는 등 교육적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각자 준비해 온 음식을 나눠 먹는 프로그램은 현재 '나눔부엌'이 유일하다. 서울 은평구와 동작구에서도 이와 비슷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지만 장소와 예산 문제 탓에 아직 시작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나눔부엌 프로그램 담당자인 김영은씨는 "지역주민들이 음식을 나누고 생각을 공유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열린 공간이길 바란다"며 "음식 나눔을 통해 자연스럽게 공동 육아와 방과 후 학교, 시니어 인생학교 등 지역공동체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1999년 12월 개관한 하자센터는 연세대학교가 서울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아동과 청소년들에게는 진로 설계 및 창의성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청장년들을 위해서는 지속가능한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회적기업 등과의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지원하고 있다. 현재 하자센터에는 4개의 대안학교와 사회적기업 8곳,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5개 팀, 공방 2곳 등 19개 단체가 상주하고 있다.
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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