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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도토리거위벌레를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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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뜨거운 끝자락에서 온종일 산을 탔다. 숲은 더위를 타지 않는 듯했다. 나무는 짙푸른 생명력을 뿜어냈다. 까마귀가 요란하게 울어댔다. 도토리거위벌레도 부지런히 제 할 일을 했다. 도토리거위벌레는 이맘때면 참나무류 가지를 잘라 땅에 떨어뜨린다. 토요일에 오른 북한산과 도봉산 등산로 곳곳에도 떨어진 가지가 눈에 띄었다.

이 곤충은 거위 목처럼 긴 주둥이를 송곳이자 톱으로 쓴다. 도토리에 구멍을 뚫고 알을 낳은 뒤 그 도토리가 달린 가지를 자른다. 도토리거위벌레는 점점 더워지는 기후를 오히려 반길 듯하다. 이 벌레는 지구온난화의 수혜종이기 때문이다. 알에서 부화한 애벌레는 도토리를 파먹으면서 자란 뒤 땅속에서 월동하는데, 겨울이 따뜻해진 덕에 살아남는 개체 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그 결과 도토리거위벌레가 알을 낳아 떨어뜨리는 도토리가 매년 2~5% 늘고 있다고 곤충연구가 한영식씨는 분석한다.
도토리는 다람쥐, 어치, 멧돼지, 곰 등이 가을에 배를 불리고 겨울을 나는 주요 식량이다. 다람쥐와 어치는 겨울을 대비해 도토리를 땅속에 저장해 두고, 멧돼지와 곰은 몸에 지방 형태로 비축해 둔다.

도토리를 둘러싼 숲 생태계가 균형을 이루던 시기의 정경을 파브르는 '곤충기'에서 이렇게 전한다. 어느 날 마을에서 그 마을 소유 도토리를 수확한다는 북을 치면, 그 마을에서는 온 집안 식구가 동원된다. 아버지는 장대로 가지를 치고, 어머니는 손이 닿는 도토리를 딴다. 아이들은 땅에 떨어진 걸 줍는다. 들쥐, 어치, 바구미, 그 밖에 많은 동물의 기쁨거리가 된 다음에는 이 수확에서 비계가 얼마나 생길까를 계산하는 삶의 기쁨이 따른다. 

이제 도토리거위벌레가 숲의 주요 식량을 제 애벌레 몫으로 먼저 챙기는 바람에 야생동물의 겨울이 팍팍해졌다. 한씨는 책 '작물을 사랑한 곤충'에서 "도토리가 줄자 반달가슴곰은 일찍 겨울잠에 들어간다"고 전한다. 지리산 산꾼들은 멧돼지 같은 야생동물이 2년 전부터 극성을 부리고 있다며 "산에 도토리가 귀해져 먹을 게 없으니 야생동물이 마을까지 내려올 수밖에 없겠지"라고 말한다.(중앙SUNDAY, 2013ㆍ6ㆍ2)
몸길이가 1㎝밖에 안 되는 도토리거위벌레가 숲 생태계의 기반을 무너뜨렸다. 도토리거위벌레를 탓할 일이 아니다. 책임은 온난화를 일으킨 우리에게 있으니.

백우진 선임기자 cobalt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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