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때는 둘이었지만 돌아오는 길은 혼자였다.
갈 때는 바람이 등 뒤에서 불었지만 돌아오는 길엔 앞에서 불어와 가슴팍 안으로 파고들었다. 혼자 어두운 둑길을 걸어오자니 밤하늘 높이 걸려있는 푸른 초승달이 자꾸 신경이 쓰였다. 마른 나뭇가지와 풀잎을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을씨년스러웠고, 어둠 속에서 뿌연 빛을 발하는 저수지의 물빛도 요기스러웠다.
하림은 아까 남경희가 했던 말들을 다시 머릿속에 곰곰이 되새겨보았다.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사실 우리 아버지도 정상적인 분이 아니예요.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도 하셨구요. 예전엔 그렇지 않았는데.... 우리 아버진 젊은 시절 오랫동안 직업군인을 하셨죠. 조금 고지식하긴 했지만 군인답게 책임감이 강하고 매사에 철저한 분이셨어요.”
그런 그가 젊은 시절 참전했던 베트남 지역을 여행하던 중 <한국군 증오비>를 보았고, 거기에 쓰여진 놀라운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자신도 어느 정도 연루된 게 틀림없을 또 하나의 사건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카인처럼 괴로워한다. 그러다가 교회에 빠졌고, 장로가 되었지만 교회 세습 문제를 두고 목사와 다툼이 벌어져 새벽에 재단에 불을 질렀다. 그리곤 장로직에서 쫒겨나 딸인 그녀와 함께 이곳으로 흘러왔고, 그래서 자기는 아버지를 위해 이곳에 기도원을 지으려고 한다고 했다.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질 만도 했다. 하지만 아직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들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자기가 어디까지 나서서 그 일에 관계해야 하나 하는 의문이 일었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지만, 아는 것만큼 관계하게 되는 것이 또한 세상일이었다. 어쩌면 안다는 자체가 이미 관계를 시작하고 있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하림이 그런 생각을 하며 걷는데, 다시 아까 지나왔던 그 자리, 어제께 밤 사내가 개를 쏘아 죽였던 바로 그 지점에 이르렀다. 갈 때는 그래도 남경희가 뒤에서 따라 오고 있었고, 말이라도 걸어주었지만 지금은 혼자였다. 덤불 뒤에서 죽은 개의 유령이 나타나 자기를 향해 흰 이빨을 드러내고 달려들 것 같은 환각에 빠졌다.
괜히 오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저절로 빨라지는 발걸음을 제어하며 하림은 오히려 보조를 더 천천히 하여 걸어갔다. 두려움은 두려움을 낳는 법이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 밖으로 나와 허상을 만든다. 그게 악마고 귀신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스려 그 근본을 유지하게 하면 그런 구름과 같은 현상은 사라지는 법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같은 보조로 걸어가는데 저쪽 어둠 속에서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그림자가 보였다.
바람이 불었다. 바람 소리에 묻혀 어디선가 <폭풍의 언덕>에서처럼 히스클리프, 히스클리프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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