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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앤비전]보이지 않는 것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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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훈 포스코A&C 대표

이필훈 포스코A&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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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한밤에 야식거리를 사러 가게를 갈 때가 종종 있었다. 깜깜한 밤중에 가게까지의 왕복시간은 공포 그 자체였다.

집을 나서기 전 장난기 많은 가족들은 뉴스에서 본 엽기적인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밤길의 무서움을 떨쳐내기 위해 불렀던 노래는 늘 애국가였다. 애국심이 공포를 이겨낼 수 있을 거란 기대 때문이었을까? 애국가의 리듬은 시간이 지날수록 빨라지고 결국은 달리기의 템포로 바뀌었다. 공포가 늘 상상 속에서 확대되었던 것처럼 즐거움 역시 상상 속에서 증폭되었다. 톰소여, 소공자, 소공녀를 비롯해 루팡과 셜록홈즈 모두 개인적 상상력으로 주인공들을 창조해 즐거워했으며 주인공이 사는 환경도 상상 속에서 만들어냈었다.
바야흐로 시각과 청각 중심의 시대다. 보는 즐거움과 듣는 즐거움이 모든 것에 앞서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어렸을 적 공포심을 느끼게 만들었던 각종 상상 속의 모습들보다 훨씬 더 강력한 시각적 충격들이 컴퓨터그래픽으로 재현되고 은밀한 사석에서나 가능했던 성적인 표현들과 거친 언어들이 공중파를 타고 들려온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성형수술과 다이어트에 집중하는 것 역시 보는 즐거움이 모든 것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누가 중요한 담론을 생산해내는가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고 어떻게 생긴 사람이 TV에 나와 재미있게 말하는가에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기에 오피니언 리더도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사람들이다.

오피니언 리더들 역시 눈과 귀에 집중해서 살아왔던 사람들이기에 그들이 생산해내는 깊이 있는 이론과 주장들은 결국 복제품으로 밝혀진다. 볼 수 없는 것, 들을 수 없는 것의 가치는 증발해버리고 모든 가치는 눈과 귀를 통해 확인 가능한 즉물적인 것에 집중된다.

알바 알토라는 핀란드의 국민 건축가가 있다. 그는 건축설계를 할 때 의식적으로 모든 종류의 감각에 관심을 두었다. 가구 하나하나가 개인적 주거의 일상을 형성하므로 가구는 빛의 반사로부터 과한 눈부심을 일으키면 안 된다. 마찬가지로 가구가 소리의 차원, 즉 흡음이 잘 되지 않는다면 곤란하다. 의자를 보면 알 수 있듯 가구는 인간과 가장 친밀한 접촉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가구는 과하게 열을 전달하는 재료로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이것이 가구에 대한 그의 철학이었다.
알바 알토는 명백하게 시각적 미학보다는 사용자의 몸과 대상의 만남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시각적 경험만으로 그의 작품을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실제로 건축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사람이 사는 공간인데 공간에 대한 논의는 없고 외관과 인테리어 치장에 모든 관심이 집중된다. 그래서 과도한 형태의 유희가 건축의 본질을 덮어버린다. 건축도 보이는 것에만 모든 가치가 부여되기 때문이다.

사찰이든, 서원이든, 주거든 우리의 전통건축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선 그 공간에 꽤 오랜 시간 머물러야 한다. 사실 전통건축의 형태는 서로 다를 것이 별로 없다. 기와지붕과 나무기둥에 마룻바닥, 온돌방 같이 전통건축은 건물이 자연과 어떻게 조우하고 있는지, 채와 채는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 채들이 만들어내는 외부공간과 내부공간은 어떻게 소통하고 있는지를 느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눈에 보이는 시각적 체험을 넘어 마음과 몸의 모든 감각을 동원해 집과 자연이 만들어내는 총체적 느낌을 경험함으로써 전통건축을 이해할 수 있다. 그 이해는 어릴 적 툇마루에 누워 할머니 할아버지의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즐거워하던 감성이 회복되어야 가능할지도 모른다.

'만들다'라는 단어와 달리 '짓는다'라는 단어에는 이미 눈에 보이지 않는 정성이 포함되어 있다. 집을 바라다보는 관찰자의 눈보다 집에서 사는 이용자의 마음을 갖게 될 때 집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듯, 우리들도 보이는 껍데기를 깨고 보이지 않는 속을 나눠야 삶의 진정한 즐거움에 한 발 다가갈 수 있다.

이필훈 포스코A&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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