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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四方]변산반도 채석강…"바다와 오랜 시간속에 그냥 웃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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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을 버텨온 채석강

▲오랜 시간을 버텨온 채석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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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세종시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세종시는 대한민국으로만 보자면 중간지대쯤 된다. 세종시에서 서해(안면도)까지 2시간20분이면 족하다. 변산반도까지 2시간15분이면 충분히 도착한다. 동해(포항)까지도 2시간 50분이면 도착하고도 남는다.

중간지대에서 시간을 쪼개 사방(四方)으로 가다보면 시간에 쫓기지 않고 천천히, 조용히 자연을 체험할 있는 여유를 가진다. 자연이야 늘 그곳에 있는 것…가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우리들의 삶이 언제나 걸림돌이지 않은가. 자연이 있는 곳으로 가만히 발길을 옮기다 보면 말이 필요치 않는 모습과 만나게 된다.
◆오랜 시간의 역사, 채석강=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던가. 변산반도국립공원에 있는 채석강에 서면 책을 읽지 않은 우리들의 일상이 갑자기 떠오른다. 채석강은 바위 책들로 수두룩하다. 수만 권의 책을 쌓아 놓은 듯 바위가 층층이 우리를 맞는다. 불어오는 해풍에, 들이닥치는 파도에 수천 년을 쓸려 깎이면서 만들어진 자연의 모습 그대로이다.

▲채석강을 산책하는 이들의 즐거움

▲채석강을 산책하는 이들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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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나라 시인 이태백은 중국의 채석강에서 달을 보며 시를 읊었다고 한다. 중국의 채석강만큼 아름다운 곳이 변산반도의 채석강이다. 때 이른 더위에 채석강 위에서 고단한 땀을 식히는 이들이 많다. 더위에 지친 손으로 층층이 쌓여있는 바위를 책장 넘기듯 쓸어 넘기는 사람들도 간혹 눈에 띈다.

저 멀리서 불어오는 서풍에 중국의 채석강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있겠거니 생각하니 시대를 뛰어넘어 이태백의 시가 변산반도 채석강에 수놓은 듯하다. 이태백은 '山中問答(산중문답)'을 통해 "問余何事棲碧山(그대는 왜 푸른 산에 사는가 물어보니)/笑而不答心自閑(웃기만 할 뿐 대답은 않고 마음은 한가롭네)"라고 세상을 읽었다.
변산반도 채석강에 서서 해중문답(海中問答)을 해 본다. "그대는 왜 푸른 바다에 서 있는가"라고 누군가 물어오면 대답은 않고 가만히 웃어줄 수 있을까. 푸른 바다에 몸을 맡긴 채 파도의 흐름대로 느끼고 파도의 흐름대로 출렁이는 아이들 때문이라고 답해 볼까.

▲아이와 바다

▲아이와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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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속에는 벌써 아이들이 풍덩 풍덩 몸을 담구고 있다. 30도를 오르내리는 계속되는 무더위는 아이들에게 더 없는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준다. 한 아이는 바다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듯, 허리를 숙이고 골똘히 바다와 한참 씨름에 빠졌다. 그 모습이 한가롭기만 하다.

◆고사포해수욕장과 하섬의 맛조개 잡이=채석강에서 나와 고사포해수욕장을 거쳐 하섬으로 가기 위해 방향을 잡았다. 하섬에 도착하기 2km 전, 인적이 드문 곳에 차량들이 줄을 서서 주차돼 있다. 무엇인지 궁금할 수밖에. 군중심리는 치명적 유혹이다.

차에서 내려 가만히 살펴보니 바닷가 근처에 듬성듬성 사람들이 허리를 폈다 구부렸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멀리서 보기에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는데 분명한 것은 손에 손에 케첩 병처럼 보이는 빨간 통을 하나씩 갖고 있었다는 것. 점점 가까이 갈수록 다른 한 손에는 호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추가로 드러난다.

▲파도의 흐름에 몸을 맡긴 아이들

▲파도의 흐름에 몸을 맡긴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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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로 갯벌을 파헤친 뒤 손가락 크기만 한 구멍이 발견되면 빨간 케첩 통에 있는 하얀 것을 마구마구 뿌렸다. 맛소금이었다. 맛소금을 뿌린 3~5초 뒤 그 조그마한 구멍에서 신비롭게도 맛조개가 쏘옥 하고 고개를 내밀었다. 마음속으로 1초정도의 짧은 여유를 준 뒤 재빠르게 맛조개를 잡으면 어른 중지 손가락만한 맛조개가 쑤욱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물때가 돼 바닷물이 밀려들고 있었지만 어른이며 아이며 다들 맛조개 잡이에 여념이 없었다.

한 손에는 빨간 케첩통, 한 손에는 갈퀴가 달린 호미를 들고 여기저기 맛조개를 찾아다니는 이들의 분주함으로 고사포 해수욕장 근처 바닷가는 더위를 잊은 '조개잡이' 꾼들로 가득 찼다. 맛조개 잡이에 정신이 팔려 물때를 놓쳐 '모세의 기적(바다가 갈라져 섬으로 갈 수 있는 곳)'이라 불리는 하섬은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 찾아올 때는 물때를 미리 체크해 바닷물이 갈라졌을 때 꼭 하섬을 가보리라 아쉬운 추억을 남겨두었다.

▲내소사의 전나무 숲길

▲내소사의 전나무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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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사 숲길을 거쳐 곰소까지
=국내 최대의 염전으로 불리는 곳, 변산반도 부안의 곰소이다. 곰소는 '소금'을 뜻한다. 거대한 염전이 있다 보니 갖갖이 젓갈로 유명하다. 곰소 전체가 젓갈을 담그는 곳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곰소항을 시작으로 여기저기 신선한 젓갈판매 업체가 줄을 이어 서 있다.

채석강에서 곰소로 가기 전에 내소사를 들러보는 것은 필연이면서 색다른 맛이다. 내소사는 백제 무왕 때 만든 오래된 고찰. 내소사 하면 초입에서 부터 대웅전까지 뻗어있는 전나무가 단연 으뜸이다. 최근 피톤치드(phytoncide)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피톤치드는 식물이 병원균, 해충, 곰팡이 등에 저항하기 위해 스스로 내뿜는 물질을 말한다. 삼림욕을 통해 피톤치드를 마시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고 항암효과가 탁월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소사 전나무 숲길은 100~120년 넘은 나이 드신(?) 나무님들로 피톤치드의 천국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피톤치드가 아니라 해도 고즈넉한 숲길을 1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전나무와 같이 걷다보면 온 몸의 피곤이 사라지는 느낌을 받는다. 몸속의 나쁜 기운이 빠져나간다.

변산반도국립공원은 바다와 숲, 염전이 어우러진 종합 휴식공간을 제공한다. 산중문답(山中問答)…해중문답(海中問答)…이 둘을 모두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바다와 숲 속에 서서 누군가 '왜 푸른 산과 바다에 사느냐"고 물어온다면 그저 웃음만으로도 대답이 되는 곳, 변산반도가 우리를 부르고 있다.
▲소금이 많이 나는 곳, 곰소

▲소금이 많이 나는 곳, 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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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정종오 기자 ikok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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