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증인선서는 '빈말 선서'?···법정서도 밥먹듯 거짓말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 박나영 기자]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서합니다"

형사소송법이 정하고 있는 증인 선서서의 내용이다. 문구상 미세한 차이는 있지만 민사소송법 또한 증인 선서서에 마찬가지 내용을 담도록 하고 있다. 법률에 따라 선서한 증인이 이를 위반하고 허위 진술한 경우 형법은 위증죄의 책임을 물어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판례에 따르면 '허위 진술'이란 객관적 진실과 다른 '말'이라기보다 '자신의 기억'과 달리 말하는 경우다. 거짓말은 물론이거니와 잘 알지 못하면서도 마치 잘 아는 것처럼, 전해들은 이야기를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것처럼 말하는 경우도 위증이다. 묻는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거나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그에 수긍한 경우 역시 위증으로 본 사례도 있다.
증인선서는 '빈말 선서'?···법정서도 밥먹듯 거짓말
AD
원본보기 아이콘

진술의 '정직'을 이토록 까다롭게 따지는 까닭은 대부분의 재판이 결국 지나간 일에 대한 앞으로의 처우를 결정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승소와 패소, 무죄와 유죄. 움직이지 않는 물증을 제외하면 결국 엇갈리는 수개의 주장 사이를 잇는 증인과 당사자의 '입'을 쫓아 실체적 진실 발견에 나설 수밖에 없다.

진실 발견을 위한 과정을 뿌리째 흔들어 놓을 수 있음에도 상당수 위증은 사사로운 목적에서 비롯된다. 안전벨트 미착용으로 단속된 A씨는 실상 무면허 운전으로 운전면허증을 제시할 수 없었다. 처벌이 두려워진 A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 직원 B씨에게 그가 운전한 것처럼 허위증언해달라고 부탁했다. B씨는 법정에서 "운전 중 교통경찰관의 단속에 걸렸는데 이를 무시하고 갔다"고 허위 진술했다. 결국 덜미를 잡힌 A씨와 B씨는 각 징역6월,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관계자는 "거짓말하는 게 뻔히 보이는데도 계속 다른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그런 사람은 나중에 위증죄로 꼭 다시 법정에 온다"고 말했다.

극단적인 경우 뚜렷한 물증이 없어 증인의 진술 및 정황을 둘러싼 합리적인 판단에 기대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 무죄가 확정된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경우도 그런 사례다. 한 전 총리는 국무총리 재임 중이던 2006년 12월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인사 청탁과 함께 미화 5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2009년 재판에 넘겨졌다. 무죄가 확정되기까지 장장 3년여, 돈이 오갔다는 정황을 입증할 직접 증거는 곽 전 사장의 진술뿐이었다. 한 전 총리가 무죄로 결론 내려진 까닭은 바로 그 곽 전 사장의 진술이 믿을 만한 게 되지 못한 탓이다.
1심 재판부는 "공적 장소에서 뇌물공여를 했다는 곽 전 사장 진술은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는 사실을 무조건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실제 만난 날이 오찬일 밖에 없다 보니 생겨난 이상한 결과가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판단했다. 뒤이은 2심 재판부는 "곽 전 사장 진술엔 합리성과 객관적 상당성이 결여돼 있다"며 나아가 "장기 구금에 대한 두려움에 검찰에 협조하기로 하고 허위진술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검찰에 의한 허위진술 가능성마저 제기했다. 대법원 역시 "곽 전 사장의 진술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만한 신빙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본 원심 판단은 정당하다"고 결론냈다.

위증의 문제는 개별 재판에 대한 실체적 진실 발견에 대한 훼방에 그치지 않는다. 위증으로 재판에 넘겨지는 경우는 2010년 1561건, 2011년 1222건, 지난해 1130건으로 매년 1000건 이상이다. 지난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국정감사 과정에서 법원행정처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대법원을 제외한 전국 70개 법원의 최근 3년간 법관 1인당 연간 사건 처리건수는 670.6건이다. 산술적으로 단순 비교하기는 애매하지만 모든 판사가 매년 2~3번쯤 위증 사범을 접하게 되는 셈이다. 법원의 판단이 허위진술을 바탕으로 내려진 경우 결국 재심사유에 해당돼 사법절차가 길어지게 되고 불필요한 비용과 노력의 소모를 낳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얼마 전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2005년 벌금 3000만원 판결을 확정 받은 한 변호사가 "유죄 증거 중 허위 증언이 포함됐다"며 재심을 청구하자 법원이 이를 받아들인 일이 있었다. 이처럼 거짓 증언으로 인해 개별 재판이 길어지는 것은 둘째치고 정직했더라면 피할 수 있었을 일에 사법인력이 노력을 기울이는 사이 다른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가 침해될 소지가 있다. 허위 증언으로 빈번하게 법원 판단이 뒤집힐 경우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사법절차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것도 피하기 어렵다. 대법원 관계자는 "위증은 실체적 진실의 발견을 방해하고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린다"고 말했다.

최근 변양균 전 정책실장이 "사회 지도층 인사의 위증을 사회가 용납해서는 안된다"며 1만원짜리 손해배상 소송을 내 결과가 주목된다. 변 전 실장은 지난해 1월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68) 부부의 위증으로 공무원으로서의 명예가 훼손되고, 정신적인 고통을 받았다"며 3억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김 전 회장 부부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면서도 "이들의 진술이 법령이나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범위를 넘어 방어권을 남용했다고 인정하기는 부족하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이에 변 전 실장은 청구금액을 1만원으로 낮춰 항소를 제기했다. 그는 "신뢰가 없는 사회에 경각심을 주고자 하는 것일 뿐 금전적 대가를 바라는 게 아니라는 뜻에서 피고들에게 1만원만 청구하기로 했다"고 항소목적을 밝혔다. 그는 "김 전 회장이 법정에서 '진실만 말하겠다'고 선서하고도 여러 거짓말을 했다"며 "사회 지도층 인사가 위증한 것을 사회가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변 전 실장은 2007~2008년 사이 배임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 전 회장이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나게 해준 대가로 변 전 실장에게 3억원을 전달했다"고 검찰조사에서 진술한 것이 거짓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 전 회장의 진술을 들은 검찰은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상태였던 변 전 실장에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를 추가했고, 김 전 회장 부부는 법정에서 검찰 측 증인으로 나와 변 전 실장에게 돈을 건넸다고 증언했다. 법원은 그러나 알선수재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고, 2009년 1월 확정판결을 받았다.

허위증언이 많아지면 이를 가려내기 위한 소송 및 재판 또한 증가하면서 그만큼 국민의 세금이 낭비된다. 또 법체제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잃게 만들어 그 피해가 고스란히 재판 당사자인 국민에게 돌아온다. 서울고법 관계자는 "위증은 피고인이나 소송당사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데 그치치 않고 국가의 사법절차를 방해하는 심각한 범죄"라고 말했다.



정준영 기자 foxfury@
박나영 기자 bohena@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자동차 폭발에 앞유리 '박살'…전국 곳곳 '北 오물 풍선' 폭탄(종합) 하이브, 어도어 이사회 물갈이…민희진은 대표직 유임 (상보) 김호중 검찰 송치…음주운전·범인도피교사 혐의 추가

    #국내이슈

  • 중국 달 탐사선 창어 6호, 세계 최초 달 뒷면 착륙 트럼프 "나는 결백해…진짜 판결은 11월 대선에서" "버닝썬서 의식잃어…그날 DJ는 승리" 홍콩 인플루언서 충격고백

    #해외이슈

  • [포토]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현충일 [이미지 다이어리] '예스키즈존도 어린이에겐 울타리' [포토] 시트지로 가린 창문 속 노인의 외침 '지금의 나는 미래의 너다'

    #포토PICK

  • 베일 벗은 지프 전기차…왜고니어S 첫 공개 3년간 팔린 택시 10대 중 3대 전기차…현대차 "전용 플랫폼 효과" 현대차, 中·인도·인니 배터리 전략 다르게…UAM은 수소전지로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심상찮은 '판의 경계'‥아이슬란드서 또 화산 폭발 [뉴스속 용어]한-UAE 'CEPA' 체결, FTA와 차이점은? [뉴스속 용어]'거대언어모델(LLM)' 개발에 속도내는 엔씨소프트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