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그들만의 리그에 수출입은행이 도전장을 내민 건 지난달 21일 새벽이었다. 발행개시 후 채 10시간도 되지 않아 무려 5억달러어치가 순식간에 팔릴 정도로 대성공이었다. 더군다나 국제기구를 제외하곤 세계 최초의 그린본드 발행이었다.
그러나 하늘이 돕는다고 했던가. 국제적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와 피치가 연이어 우리 정부 및 수은의 신용등급을 더블A로 올렸고, 사상 처음 일본과 중국을 제치는 쾌거를 거뒀다.
어디 처음부터 쉬운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투자자들에 수은이 '녹색전담 금융기관'이란 걸 먼저 증명해야 하는 게 선결과제로 떠올랐다. 즉각 수은은 세계적 기후ㆍ환경 전문연구기관인 노르웨이 국제 기후ㆍ환경연구센터(CICERO)에 '적격성 검증작업'을 요청했다. CICERO는 2008년 세계은행이 최초로 그린본드를 발행할 때부터 '녹색산업' 인증을 통해 발행자와 투자자의 신뢰관계를 이어주는 핵심적 역할을 해 왔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수은은 주요 투자기관을 물밑에서 접촉해 그린본드 발행시 투자의사가 있는지 알아봤다. 결과는 기대 수준 이상.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사회적책임투자자(SRI)의 문의와 면담 요청이 쏟아졌다. 이에 힘입어 수은은 전격적으로 지난 1월 하순부터 미국ㆍ유럽 투자설명회를 열었다. 지구 한 바퀴를 돌다시피 강행군을 펼친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그린본드 발행을 목전에 둔 지난달 12일, 또 다른 돌발 변수가 발생했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했던 것. 혹시 '다 된 밥에 코 빠뜨리는 격'이 되지 않을까 실무진들은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국제적 신용평가기관들이 입을 모아 "북한변수가 한국경제의 펀더멘탈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며 분위기를 잡아줬고, 북핵 관련 소문이 사실로 확인되면서 오히려 불확실성이 제거돼 시장은 안정을 찾아갔다.
드디어 디데이(D-Day)로 다가온 지난달 21일 새벽, 수은은 전 세계 투자자들을 상대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저 금리수준으로 그린본드를 발행했다. 국내 최대 채권발행기관인 수은이 북한 핵실험의 파고를 넘어서 국제기구들과 어깨를 나란히하며 그린본드 발행에 성공한 순간이었다.
김용환 수출입은행장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