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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박재삼의 '추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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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장터 생어물전에는/바닷밑이 깔리는 해 다 진 어스름을,/울엄매의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빛 발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은전(銀錢)만큼 손 안닿는 한이던가/울엄매야 울엄매,/별밭은 또 그리 멀어/우리 오누이의 머리 맞댄 골방 안 되어/손시리게 떨던가, 손시리게 떨던가,/진주 남강 맑다 해도/오명 가명/신새벽이나 별빛에 보는 것을,/울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

박재삼의 '추억에서'

■ 삼천포 시인 박재삼. 어물(魚物)장사를 했던 어머니는 멀리 진주 장터로 출퇴근하느라 신새벽에 나가서 별밤에 들어왔던가 보다. 해질 무렵 아직도 생선이 남은 통을 들여다보는 시장통의 여인. 돈대신 한숨만 쌓이는 장사. 어머니를 기다리는 삼천포의 어린 아이들은 골방에서 추워 웅크렸다. 혹시 별을 쬐면 따뜻해질까 싶어 작은 손을 내밀었으나 더 시리기만 한 손을 비비는 아이들. 그런데 이 시는 가난하고 외로운 삶을 아름답게 기억해낸 시인의 묘사 그 이상의 매력이 있다. 바닷가에 오래 산 사람다운 예민한 감광(感光)센스라 할까. 곳곳에 고운 빛들이 스며들어 있다. 해 다 진 어스름 빛, 그 빛을 되비치는 물고기 눈알의 빛, 몇 개 안되는 동전에 비치는 빛, 골방에서 바라보는 별빛, 새벽빛과 별빛에 출렁이는 남강의 수면, 달빛 받은 옹기같은 울엄매의 마음빛. 시 한편이 잊지 못할 '빛의 징검다리'이다. 그 빛을 따라 시를 다 건너오면, 덩달아 서럽게도 '울엄매'가 그리워지는 저 빛. 달빛 가득한 밤 옹기전을 지나는 어머니의 눈에 어린 눈물방울의 빛.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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