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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앤비전]층간소음 해결법, 공동체 삶에 대한 양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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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위음악가인 존 케이지의 '4분33초'라는 곡이 있다. 연주가는 무대 위로 올라와 피아노 앞에 앉아 4분33초 동안 가만히 앉아 있다 들어간다.

4분33초는 273초를 의미한다. 동시에 지상에 존재하는 최하의 온도 영하 273도를 나타낸다. 이 온도는 아무것도 살 수 없는 환경이다. 완벽한 정적, 영하 273도의 하버드대 무음실에서 존 케이지는 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가 맥박을 포함한 자신의 몸이 내는 소리라는 것을 안 후 완벽한 무음 상태에도 소리가 존재하며 그 소리가 곧 음악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층간소음으로 살인과 방화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인터넷에는 층간소음 해결에 대한 섬뜩한 글들이 많다. 위층에서 들리는 소음에 복수하기 위해 그 위층으로 이사가 볼링공을 굴리겠다, 환기구를 통해 야동을 틀겠다, 발코니 슬래브를 뚫어 지독한 냄새를 위층으로 올리겠다는 얘기들이다.

현재 층간소음 기준은 경량충격음 58데시벨이다. 이에 따라 2004년 12㎝였던 슬래브 두께를 21㎝로 조정했다. 국토해양부는 최근 빈번히 발생한 층간소음 문제로 경량충격음의 기준을 45데시벨로 낮추고 이에 따라 슬래브의 두께를 3㎝ 더 두껍게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슬래브를 두껍게 할수록 공사비는 올라간다. 3㎝를 두껍게 하면 골조공사비가 10% 정도 증가하고 25평형의 경우 200만원 정도의 공사비 상승이 예상된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방법으로도 층간소음을 완벽히 차단할 수 없다는 데 있다. 12㎝ 두께의 슬래브로 지어진 아파트에서는 소음을 완화할 마땅한 방법이 없고 21㎝로 지어진 아파트 역시 층간소음 민원이 지속되고 있다.
층간소음 문제는 물리적 숫자의 문제이기보다 심리적 숫자의 문제일 수 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다만 같이 모여 살아가는 방법이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깨달아 집단적 생활을 하는 것으로 사람에게는 가족, 마을, 국가라는 공동체의 테두리가 있다.

아파트의 삶은 매우 밀도가 높은 주거공동체다. 같이 모여 살기에 누리는 많은 혜택들이 있다. 공유할 수 있는 넓은 마당과 주차장 및 공용 공간, 낮은 관리비, 내 집의 벽과 바닥 그리고 본인들의 천장이 다른 집의 벽과 바닥, 천장이기에 단독주택에 비해 공사비와 유지 관리비가 저렴하다.

공동체 삶의 진정한 즐거움은 '더불어 사는 삶'이다. 먹을 것을 나누고 서로를 돌봐주고 나아가 서로의 삶에 관여하면서 본질적으로 외로울 수밖에 없는 우리 삶을 위로해준다.

하지만 작금의 아파트에는 공동체적 삶이 없다. 윗집, 옆집, 아랫집은 이웃이 아니라 내 삶의 영역을 침범하는 타인들이다. 그들에게는 다가오지 말라는 위협과 공격이 필요할 뿐이다. 층간소음으로 살인을 한 사람은 이야기한다. "따뜻한 말투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만 했더라도 그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마을가꾸기란 프로그램을 통해 농촌 생활의 질을 높이고자 몇 년간 시골을 다닐 때 '범죄 없는 마을'을 만났다. 이 마을들의 공통점은 씨족사회라는 점이다. 친척들이 모여 사는 사회, 서로를 잘 아는 집단적 삶이다. 익명성에 나오는 대부분의 범죄와 다를 수밖에 없는 얘기다.

완벽한 진공 속에서도 소리는 존재한다. 예민해지면 시계소리에도 잠을 못 이루고 피곤하면 천둥소리에도 곤하게 잔다. 우울증으로 자살을 생각할 때 시장의 활기찬 소음과 옆집 아이의 커다란 웃음소리는 삶에 대한 새로운 의욕을 채워준다.

그런 점에서 층간소음의 문제는 단순한 물리적 소음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과밀한 공간 안에서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다. 한편으로는 개인 안에 쌓인 분노의 문제다. 그렇기에 층간소음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은 슬래브를 두껍게 하는 물리적 방법이 아닌, 공동체적 삶을 회복하는 사회적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필훈 포스코A&C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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