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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녀 사망으로 억대 보험금, 범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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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보험 든 뒤 동거 한달 만에 주검으로···대법, 징역 10년 원심파기

[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박모(32)씨는 전처와 이혼한 뒤 딸을 보살펴 줄 보모를 구하다 인터넷 구인광고로 알게 된 동갑내기 A씨와 2007년 5월 동거를 시작해 같은 달 혼인신고를 마쳤다. 박씨는 사업실패로 곤궁한 처지임에도 혼인신고 일주일 만에 차를 마련해 A씨가 몰도록 했다. A씨는 운전경력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와 A씨가 혼인신고 한 지 한달여 뒤 A씨는 강에서 차와 함께 사체로 발견됐다. 박씨가 A씨에 대해 가출신고 한 지 10여일만에, 발견장소를 신고한 사람은 박씨의 친구 양모씨였다. 이듬해 4월까지 박씨가 챙겨 간 보험금은 1억 9800만원, 앞서 가입해 둔 보험은 4억 4000만원 규모였지만 위장사고 가능성을 의심한 보험사들이 박씨의 지급청구를 거절했다.
검찰은 운전이 미숙한 A씨를 죽인 뒤 이를 교통사고로 가장해 보험금을 가로채려 한 혐의로 2011년 박씨를 재판에 넘기고, 박씨의 보험사기를 거든 혐의로 양씨도 함께 기소했다. 박씨는 "운전연습을 해야겠다며 나간 A씨가 연락이 닿지 않아 가출신고한 것뿐"이라며 범행을 부인했다.

이어진 재판 과정은 결국 A씨가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숨진 것인지 확인할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A씨의 죽음이 타살이라면 그 범인을 박씨로 볼 수 있을지 여부를 두고 사건을 둘러싼 '조각'들을 끼워 맞추는 과정이었다.

법원은 1심에선 박씨를 살인범으로 봐 징역15년을 선고했으나 2심에선 박씨를 살인범으로 보기엔 증거가 부족하다며 다른 혐의에 대해서만 징역10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다시 박씨를 살인범으로 의심하기에 충분하다며 다시 재판하라고 결정했다. 대법원 1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박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10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6일 밝혔다.
앞서 1심은 사체발견 장소가 운전이 미숙한 A씨라면 드나들지 않을 샛길인 데다, 부검 결과 A씨에게 운전미숙에 따른 통상의 반사작용에 따른 신체 손상이 발견되지 않고 머리에 사고 이전 외상을 입은 흔적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해 A씨의 죽음을 타살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박씨를 주범으로 지목했다.

사망추정일 전후 휴대전화 발신내역을 토대로 추정한 A씨와 박씨의 이동경로가 비슷하고 A씨가 어머니와 나눈 통화에서 "남편이 강가에서 부른다"는 대화가 있었던 점, 사체발견 장소는 강물 속으로 이를 우연히 발견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워 범인이 아니면 알 수 없음에도 양씨는 이를 박씨가 불러주는 대로 신고했을 뿐이라 진술한 점 등이 근거로 제시됐다.

경찰에 사체발견 장소를 신고하며 신원을 숨겼던 양씨가 수사망에 걸려들자 박씨가 성대 성형수술을 강권한 점, 월세도 제대로 내지 못하던 박씨가 A씨의 사체가 발견된 지 채 한 달이 되기 전에 보험금을 청구한 점도 이 같은 시각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2심은 "박씨가 A씨를 직접 살해한 것이 아닐까 하는 매우 강한 의심이 든다"면서도 가장 중요한 간접사실이 될 사건 당시 박씨가 범행현장에 있었다는 점에 관한 증명이 부족한 점, 휴대전화 발신내역에 따른 이동경로를 추적하면 박씨가 범행을 완수하기엔 시간이 충분치 않고, 범행을 위해선 두 대의 차량이 동원되었어야 하는데 이를 증명할 객관적 증거가 없는 점 등을 토대로 "합리적 의심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박씨의 살인 혐의를 무죄로 봤다.

대법원은 그러나 “살인죄에 있어 범죄의 일시·장소·방법을 구체적으로 명확히 인정할 수 없는 경우에는 개괄적으로 설시해도 무방하다”며 2심이 품은 의심이 박씨로부터 살인 혐의를 지우기엔 “합리성이 없거나 부족하다”고 봤다.

대법원은 "휴대전화 통화내역상 발신지로 표시된 행정단위만을 근거로 박씨의 이동경로를 특정 장소로 전제한 것은 합리성이 없다"며 "제반 사정이 고려되지 아니한 현장검증결과에 따른 소요시간 및 기지국의 위치 등만을 기초로 해 직접 살해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한 원심은 합리적 의심이라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두 대의 차량 문제 역시 박씨와 A씨가 각자의 차량을 운행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박씨가 A씨의 사망 이후로 추정되는 시각에 A씨 휴대전화를 소지하고 있었다면 이는 A씨 의사에 의하지 아니하고 가져왔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보여주는 간접사실의 하나로 볼 수 있다”며 박씨가 범행현장에 있었다는 증명이 부족하다는 대목은 더 면밀히 심리·판단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함께 재판에 넘겨진 양씨는 A씨의 죽음이 사고사가 아닌 점을 알고서도 박씨의 보험금 수령을 도왔다고 인정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본 2심 판단이 그대로 받아들여져 앞서 박씨와 따로 저지른 보험사기만 유죄로 인정돼 징역5월에 집행유예2년이 확정됐다.



정준영 기자 foxf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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