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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왜 만드냐고요? 세상 편집하는 맛, 죽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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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지키는 사람들 <2> 출판전문학교 서울북인스티튜트 정은숙 원장

[아시아경제 이상미 기자]"출판사마다 체계적인 신입 교육을 할 수 없었던 시절에는 모든 일을 선배의 어깨너머로 배울 수밖에 없었다." 국내 유일의 출판전문학교인 서울북인스티튜트(SBI)의 정은숙 원장(50·사진)은 28년 전인 1985년 출판계에 입문할 당시를 떠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정 원장은 "교육에 대한 열망은 컸지만 각자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웠다"며 "결국 힘을 합쳐서 함께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데 출판계의 뜻이 모이면서 2005년 서울북인스티튜트가 설립됐다"고 설명했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서울북인스티튜트는 18개 출판사가 출연한 설립기금과 독서진흥특별회계 지원금, 67개 출판사의 기부금으로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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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북인스티튜트는 낮보다는 밤에 더 활기를 띤다. 대부분의 수강생들이 낮에는 출판사에서 일하고 퇴근한 다음 모이기 때문이다.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이어지는 강연에 지칠 법도 하지만 수강생들의 열기는 뜨겁기만 하다.
마음산책 출판사에서 편집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심재경(38)씨는 "마감이 임박하거나 일이 바쁠 때면 무리라는 생각도 들지만 편집업무 커뮤니케이션 수업을 들으면서 실제로 일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다"며 "수업을 계기로 다른 출판사에서 일하는 편집자들과 경영자들을 만나 정보를 공유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장점"이라고 말했다.

정 원장은 "초반에는 편집자, 마케터, 디자인 과정으로 소박하게 시작했지만, 갈수록 교육과정이 세분화되고 늘어났다"며 "어떤 강의가 필요한지 사전에 수요조사를 한 다음 강의를 개설하기 때문에 참여율도 높은 편 "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7년간 서울북인스티튜트에 참여한 교수는 170명, 수료인원은 7447명에 달하고, 총 169개의 교육과정이 운영됐으며, 교육 횟수는 396회에 이른다.

서울북인스티튜트에서는 재직자들의 직무능략 향상을 위한 재직자 직무향상과정과 함께 예비출판인들을 선발해 교육하는 신규인력양성과정, 일반인들도 참여할 수 있는 일반과정 등을 운영하고 있다. 예비출판인을 양성하는 신규인력양성과정의 경우, 지난해 20명을 모집한 편집자 과정에 170여명이 몰려 8대 1이 넘는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무엇이 예비출판인들로 하여금 높은 노동강도와 박봉에 시달린다는 출판계에 끊임없이 발을 들여놓게 만드는 것일까? 정 원장은 "월급과 처우는 대기업이나 일반기업에 비해서 낫다고 할 순 없지만 늘 책과 함께하는 삶이 가진 매력은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다"며 "책이 한권씩 나올 때마다 느끼는 성취감과 기대감은 남다르다 "고 말했다.

정 원장은 ""책을 지키는 사람들은 단순히 책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다고 생각하지 않고, 책을 통해서 세상을 편집한다고 믿고 있다"며 "'책을 왜 만드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도록 만드는 게 출판교육의 참의미"라고 덧붙였다.

정 원장은 "서울북인스티튜트가 이제 직업적 전문교육의 기반을 다진 만큼 출판인들이 스스로 '왜 책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교육의 지평을 넓혀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출판인들이 당장 자신에게 닥친 일에 매몰되지 않고, 보다 긴 안목에서 일과 삶에 대한 좌표를 설정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게 목표"라고 덧붙였다.

올해 북인스티튜트에서는 출판인들이 '함께 읽고 싶은 책'으로 선정한 100권의 책을 주제로 '백책백강'이라는 교육프로그램을 시작한다. 오는 2월 임기가 만료되는 정 원장은 "출판인들은 매일 책과 씨름하다 보니 오히려 순수한 독자로서 책에 몰입하기가 힘들다"며 "저자의 살아있는 지식과 지혜가 '출판업무'로서의 책이 아닌 '출판 향유'라는 책의 가치로 출판인들을 이끌 수 있도록 끝까지 돕고 싶다"고 말했다.




이상미 기자 ysm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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