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점에서 우리 고교는 60년 이상 지속해온 전근대식 교육운영 방식을 새로 짤 때가 됐다. 우리 고교생의 학교생활을 보자. 한마디로 '붕어빵'처럼 천편일률적이다.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은 같은 시간에 등교하여 거의 같은 수업시간표에 따라 공부하고 집에 돌아가는 시간도 같다. 정부가 정한 교육과정 지침에 따르면, 3년간 204단위를 이수하고 이 중에 학생의 진로와 적성을 고려한 선택교과 이수단위가 64단위로 전체의 3분의 1에 이르고 있다. 외형상 선택 중심의 교육과정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도 이수해야 할 교과목과 단위 시수가 많아 정규 수업시간에 공부할 과목을 선택할 여지가 없다. 이러다 보니 학생의 흥미와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반 편성과 수업 진행으로 뒤처진 학생은 포기하고 잘하는 학생은 외면하는 소위 '교실붕괴'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자기 소질을 찾아보고 자기 수준에 맞춰 공부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학교에서 제공하지 못하면서 '행복한 학교'를 말한들 학생들은 믿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계발하고 수준에 맞게 공부할 수 있는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미국의 교육제도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초등학교부터 능력별 반 편성이 이뤄져 우수한 학생들을 위한 영재반과 학습에 뒤처진 학생을 위한 기초반을 두고 있다. 같은 과목이라도 학생의 수준에 따라 학업내용과 수업진도를 달리한다. 자기만 열심히 하면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고등학교에서 대학과정을 공부하기도 한다. 고등학교에서 대학과정을 배우는 기회를 많이 부여하여 자기 전공 분야를 결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재학 중인 학교에서 대학과목을 선이수하든지(AP제도ㆍAdvanced Placement), 대학교수가 직접 교수를 고등학교에 보내 수업과 평가를 동시에 진행하기도 한다. 학점을 제대로 받지 못한 학생에게는 야간 학교나 토요 학교 등을 운영하여 보충할 기회를 부여한다. 학생들의 과목선택도 대학의 전공과목처럼 진로와 적성에 맞추어 원하는 학과목을 선택하여 들을 수 있다.
이제 우리도 대학입시의 굴레에서 벗어나 아이들의 꿈을 찾아 주는 교육의 장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아이들을 미성숙한 존재로 보고 어른들이 짠 틀에 따라 공부시키는 경직된 사고를 버릴 때가 됐다. 고등학교 교육과정 운영도 대학처럼 학점이수제로 바뀔 때가 된 것이다.
김경회 성신여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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