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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성폭력 '항거불능' 범위 넓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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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도가니 사태' 이후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가운데, 장애인 성폭력을 처벌하기 위한 법적 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목소리가 검찰에서 나왔다. 혐의가 성립하기 위한 조건인 '항거불능 상태에 이르는 신체장애 또는 정신상의 장애'의 범위를 지금보다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김진숙 부장검사ㆍ이하 여조부)는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청사에서 '성폭력 피해 장애인 인권보호를 위한 유관기관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에는 김 부장검사를 포함해 같은 부 최순호ㆍ배성효ㆍ유현정 검사, 박지영 법무부 인권정책과 검사, 신은선 여성가족부 운영지원과 검사, 박성수 서울지방경찰청 생활지원과장, 배복주 장애여성공감 대표, 황지성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장 등 유관기관 관계자 20여명이 참여했다.

여조부는 간담회에서 "현행 성폭력법 제6조가 정한 장애인에 대한 간음행위가 적용되려면 단순히 '신체장애 또는 정신상의 장애'가 있다는 점만으로는 부족하고 장애가 주된 원인이 돼 강간죄 폭행협박의 정도와 동일한 수준의 항거불능 상태에 있음이 입증될 것을 요구한다"고 지적했다.

이 점을 전제로 여조부는 "결국 항거불능 상태를 유발하는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의 범위를 너무 협소하게 판단함으로써 장애인 강간죄의 성립 범위를 축소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되면 장애인을 힘으로 제압하지 않고 정신적인 장애만을 악이용해 성폭행을 범한 사람을 처벌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관련 법 조항 및 적용 기준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대법원은 '장애에 따른 항거불능'을 '신체 또는 정신상의 장애 그 자체로 심리적 또는 물리적으로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상태 및 장애가 주된 원인이 돼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곤란한 상태'라고 판시한 바 있다. 장애 그 자체 뿐만 아니라 장애 때문에 반항할 수 없는 상태였다는 점이 입증 돼야만 처벌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김 부장검사는 "판례가 '항거불능 상태'라는 구성요건을 다소 엄격하게 해석해 죄의 성립을 부정하는 사례가 많았다"면서 "수사기관도 판례에 따라 피의자를 기소하는 데 다소 소극적인 경향이 있었다"고 말했다.

강간죄 자체에 관한 재고의 목소리도 나왔다. 강간죄의 폭행 및 협박의 정도를 확대해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영국의 경우 자국의 관습법을 통해 강간을 '여성의 의지에 반하여 힘으로 행해진 불법적인 육체관계'로 정의하며, 스웨덴의 경우 처음부터 합의된 성관계라 해도 피임기구의 사용을 거부했다면 강간으로 간주해 처벌토록 한다.

미국 일리노이주는 '성관계 혹은 성적 접촉에 동의한 사람이 성관계 또는 성적 접촉의 과정에서 동의를 철회한 뒤에도 상대가 성행위를 중단하지 않으면 강간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정했고, 독일의 경우 개정 형법을 통해 '피해자가 행위자의 공격에 대해 보호 없이 노출돼 있는 상태를 이용하여'라는 단서를 추가해 강간죄의 범위를 넓혔다.

김 부장검사는 "우리 형법도 기존의 최협의설의 폭행, 협박에 의한 강간죄를 중강간죄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단순히 침해하는 수준의 보다 경미한 강간죄를 보통의 강간죄로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현재 판례는 정작 사안을 판단하는 데 있어 보호법익이라고 주장되는 성적 자기결정권이 아닌 여성의 정조를 기준으로 삼아 폭행이나 협박의 정도를 좁게 해석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태도는 재고될 여지가 많아보인다"고 설명했다.



김효진 기자 hjn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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