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 인정 안하고 자연재해로 몰아가"
봉사활동을 하러 온 인하대학생 10명을 비롯해 13명의 목숨을 앗아간 산사태 현장은 멀리서부터 짙푸른 녹음 속에 마치 지옥의 문을 열어 놓은 듯 시꺼먼 속을 드러내 보였다.
경찰들이 가로막고 있는 현장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산 꼭대기에서 토사가 흘러 내려와 토산품 판매장을 덮친, 깊은 고랑이 파인 산사태 현장이었다. 원래 있던 건물은 아예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도 다른 건물은 다 놔두고 콕 찍어서 한 집만 덮쳐 잠자던 주민 1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원래는 사람이 접근을 못할 정도로 나무와 토사로 가득 차 있었지만 어제부터 치우기 시작해 거의 다 정리된 상태였다. 처음엔 119 소방대도 구조를 위해 출동했지만 접근을 하지 못해 한동안 장애물을 걷어내느라 애를 먹을 정도였다고 한다. 자연의 힘이란 정말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100m 쯤 더 올라가자 인하대학생들이 목숨을 잃은 산사태 현장이 보였다. 멀리서 보기에도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거인이 손으로 짓누른 듯 느껴질 정도다. 벽은 모두 터져버렸고, 집의 잔해와 나무 줄거리가 산산 조각나 흩어져 있었다. 이곳에서 35명의 인하대학생들이 머물다가 1층에 있던 20명의 1ㆍ2학년 학생 중 10명이 목숨을 잃었다. 현장 목격자들에 따르면 산사태 직후 탈출한 학생들의 귀에 한동안 살려달라는 비명이 들렸다고 한다. 토사 속에 묻혀 고통스럽게 죽어간 희생자들의 아픔이 느껴지는 것 같아 가슴이 메어왔다.
이곳 주민들도 갑작스러운 사고에 당황해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현장 입구 슈퍼 '양촌상회'에서 만난 50대 주민은 "아들 딸 같은 젊은 학생들이 죽어서 너무 가슴이 아프고 미안하다"며 "우리도 며칠 째 영업을 못하고 피해를 입었지만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 하겠다"고 말했다.
옆에 서 있던 다른 주민은 "우리 동네는 소양강댐이 옆에 있어서 물난리나 산사태 걱정은 하지도 않고 살았다"며 "이런 일은 처음 일어나 너무 당황스럽다"고 호소했다.
잠시 기사를 정리할 겸 춘천시가 상황실로 사용했다던 현장 입구 호프집으로 들어갔다. 무사히 빠져나왔지만 물건을 챙겨 나오지 못한 일부 여행객들이 이 곳에서 현장이 정리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40대 남성인 한 여행객은 "짐이 다 펜션 안에 깔려 있어서 빼내려고 하는데 경찰이 못하게 막고 있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현장을 둘러 본 민주당 손학규 대표ㆍ송영길 인천시장과 함께 30분 쯤 달려 강원대학교 병원에 도착했다. 아직 조문할 빈소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초췌한 얼굴의 유족 대표들이 맞이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와 춘천시 부시장도 곧 도착해 자리를 같이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유족들은 "무슨 이런 나라가 다 있냐"며 울분을 터뜨렸다. 사고 수습 주체인 춘천시가 천재로 몰아가면서 인재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또 춘천시장이 어제 사고 이후 유족들을 만나주지 않고 있다는 점도 유족들을 분노하게 했다고 한다. 한 유가족 대표는 "내가 토목이 전공인데, 산사태는 반드시 과실이 있는 인재"라며 "냉동실에 누워 있는 13명의 희생자들을 생각해봐라. 우리는 지금 춘천시에 엎드려 빌면서 도와달라고 하는 기분"이라고 분노를 터뜨렸다.
또 다른 대표도 "춘천시가 인재를 인정하면 덤터기를 쓸 것 같아서 책임 인정을 꺼리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고 있다"며 "손 대표가 오셨으니 통 큰 결단을 내려달라"고 호소했다.
유족대표들은 전날부터 시신 인도와 임시 빈소 설치를 거부한 채 위로금 규모를 정해서 알려 줄 것, 현장에 위령비를 세워 줄 것, 조사를 정확히 해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워 줄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손학규 대표와 송영길 시장 등은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할 지 모르겠다. 국회 차원에서 정부의 대책을 요구하는 등 최대한 빨리 보상과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특히 송 시장은 3선 국회의원 출신다운 '내공'을 보여 줘 눈길을 끌었다. 송 시장은 "주민들 말을 들어보니 사고가 난 산 꼭대기에 과거 대공포 부대가 주둔했었다는데, 이전하면서 뒷정리가 제대로 안 돼 지반에 물이 스며들어가 이번 사태가 발생한 것인지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또 "연평도 사태 당시 민간인 희생자 보상 과정을 볼 때 국가의 과실을 법적으로 따지는 것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 행정안전부의 특별교부금 등 우회적인 방식으로 보상 문제 등을 풀어야 한다"고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하면서 유족들을 위로했다.
유족대표 면담을 끝내고 나오니 그렇게 무섭게 퍼붓던 비가 어느새 멈췄다. 면담을 마치고 나오던 한 관계자는 "이 비가 그쳤듯이 유족들의 마음에서 흐르는 눈물도 하루 빨리 그치고, 고통 속에서 숨졌을 희생자들이 편안히 잠들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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