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1979년 10월 의정부 306보충대. 허름한 군복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억울했다. 가수 데뷔를 앞두고 받은 나라의 부름. 꿈은 한순간 날아간 듯했다. 애써 좋은 추억들을 떠올렸다. 그래야만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2년여 전 처음 서울 땅을 딛었을 때도 그랬다. 완행버스 안은 갑갑했다. 낯선 길 탓은 아니었다. 대책이 없었다. 손에 꼭 쥔 신문조각이 전부였다. 예쁘게 오려낸 영화배우 모집 광고. 서울에 다다를수록 자신감은 줄어들었다.
이튿날 가까스로 찾은 명보극장. 호명에 발은 그대로 무대를 향했다. 이내 그는 신기루를 의심했다. 심사위원으로 당대 최고 스타들이 자리했다. 영화배우 김희라와 광고모델 도신우. 최영철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언젠간 저 자리에 설 수 있겠지’라는 생각에 미친 듯 연기를 했다. 며칠 뒤 날아온 합격 통보에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고향 사람들이 TV 앞에 모여 실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참담했다. 짧은 시간 알아본 게 여동생 하나였다.”
단역생활은 껌처럼 길었다. 텅 빈 호주머니. 여관 지하방 투숙으로 심신 역시 지쳐갔다.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고향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최영철의 꿈을 기억하는 이였다.
“가수 한 번 해보지 않을래?”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