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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상식밖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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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를 보내면서 두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한권은 법정 스님이 쓴 <아름다운 마무리>이고 다른 한권은 미국의 경제학자 댄 애리얼리가 쓴 <상식 밖의 경제학>입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두 권의 책은 분위기가 180도 다릅니다. <아름다운 마무리>가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수필집이라면 <상식 밖의 경제학>은 정교한 정물화 같은 책입니다.

<상식 밖의 경제학>은 경제적 동물이라는 인간의 의사결정 과정을 재미있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읽다보면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는 속담이 왜 맞는 말인지 알 수 있는 내용도 있습니다. 저자는 실험을 통해 공짜의 매력을 입증했습니다. A초콜릿을 개당 15센트에, B초콜릿을 개당 1센트에 팔았더니 소비자들은 이성적으로 가격과 품질을 비교해 73퍼센트는 A초콜릿을 골랐고, 27퍼센트는 B초콜릿을 골랐습니다.
반면 A제품을 14센트에, B제품을 공짜에 팔았더니 69퍼센트의 고객이 B제품을 선택했고 31퍼센트만이 A제품을 골랐습니다. 각 제품을 1센트씩 내린 것에 불과했는데 A제품의 판매가 73퍼센트에서 31퍼센트로 곤두박질 친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우리가 살면서 딱히 필요 없는 물건인데도 단지 공짜이기 때문에 구매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합니다. 공짜가 이성을 마비시킨다는 것이죠. 저자는 이런 비이성적 행동들을 예측할 수 있게 된다면 좀 더 나은 삶을 살수도 있을 것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법정 스님은 <아름다운 마무리>에서 비이성적 행동(?)의 소중함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경제적 동물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렇게 전해줍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음이다. 내려놓음은 일의 결과나 세상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뛰어넘어 자신의 순수 존재에 이르는 내면의 연금술이다. 내려놓지 못할 때 마무리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또 다른 윤회와 반복의 여지를 남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고 그 비움이 가져다주는 충만으로 자신을 채운다.”

그러면서 법정 스님은 ‘놓아두고 가기’를 권면합니다. “때가 되면 삶의 종점인 섣달 그믐날이 되면 누구나 자신이 지녔던 것을 모두 놓아두고 가게 마련이다. 우리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나그네이기 때문이다. 미리부터 이런 연습을 해 두면 떠나는 길이 훨씬 홀가분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상식 밖의 경제학>의 경제적 동물이 <아름다운 마무리>의 맑은 영혼으로 도약할 때 참 행복이 찾아오는 게 아닐까요. 세계경제를 파탄 낸 월스트리트 사람들이 지난 연말 성과급 잔치를 벌인 건 그들이 경제적 동물 일뿐이기 때문입니다.
경제 불확실성에 절망해 거부(巨富)들이 잇따라 자살을 한다는데 이 또한 ‘내려놓음의 진리’를 터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달리는 열차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은 독일의 억만장자 아돌프 메르클레의 가족은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이 열정적인 기업가를 궁지로 몰았고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밝힌 데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삶에는 오로지 채움만 있었습니다.
경제레터 독자여러분! 소유할 것입니까, 존재할 것입니까. 우리는 너무 소유에만 집착합니다. 오죽하면 “나는 문제를 하나 갖고 있다”고 표현하겠습니까. <소유냐 존재냐>를 쓴 에리히 프롬은 “나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고 말해야 할 것을 “나는 문제를 하나 갖고 있다”고 표현하는 건 소외현상의 한 증거라고 말했습니다. 프롬은 인간은 소유함으로써 소유하고 있는 대상물에 대하여 주체적 입장에서 객체적 입장으로 바뀌며, 소유물로 인해 존재의 이유를 얻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곧 소유하고 있는 대상물을 잃게 되는 순간 존재 이유가 없어지게 된다는 것이지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행복하지 않은 건 자신의 존재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살기 힘들어졌으니 이참에 존재하는 삶의 양식을 배워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법정 스님은 말합니다. “차지하거나 얻을 수 없는 것을 가지려고 할 때 우리는 가난해진다. 그러나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한다면 실제로 소유한 것이 적더라도 안으로 넉넉해질 수 있다. 자신의 처지와 분수 안에서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진정한 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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