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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담(手談)]바둑 金 병역특례, 숨겨진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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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돌과 백돌이 놓일 때마다 한국과 중국 바둑 팬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생사를 가르는 수읽기의 순간. 단 하나의 실수가 패배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럴 때 바둑 기사들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경우의 수를 계산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한계의 지점까지 그 과정을 반복한 뒤 착점에 이른다. 반상(盤上)에 놓인 흑과 백의 어울림을 예술에 비유하는 것도 이 때문일까.


3일 중국 항저우 중국기원은 바둑이라는 예술을 대중에게 선보인 현장이었다.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남자 바둑 단체전이 그곳에서 열렸다. 바둑은 정적인 스포츠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역동성은 단연 최고다. 단 몇 초 사이에 천당과 지옥을 오가게 하는 아시안게임 종목이 바둑 말고 또 있을까. 관중들은 그 변화에 박진감을 느끼겠지만 선수들은 피가 마른다.

특히 한국 신민준 9단과 중국 커제 9단의 남자바둑 단체전 결승은 손꼽히는 명승부였다. 양국의 바둑기사 각각 5명씩 대결을 벌여 3승 이상을 거두면 승리하는 단체전 결승. 커제는 중국 바둑의 버팀목이자 상징이다. 중국 입장에서 커제가 무너지는 장면은 상상도 하기 어렵다. 다른 곳도 아닌 중국기원에서 한국에 무릎을 꿇는 것을 의미한다.


3일 중국 저장성 중국기원 분원에서 열린 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 바둑 남자단체 결승전에서 한국 신민준(사진 오른쪽)이 중국 커제와 대국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3일 중국 저장성 중국기원 분원에서 열린 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 바둑 남자단체 결승전에서 한국 신민준(사진 오른쪽)이 중국 커제와 대국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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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세계 최강 신진서 9단을 중심으로 금메달 전략을 짰다. 아시안게임 3연패를 노리는 박정환 9단과 탄탄한 기량을 뽐낸 김명훈 9단이 여기에 힘을 실었다. 변상일 9단이 중국에 일격을 당하면서 남은 4명의 부담은 더 커졌다. 승부처로 인식되던 신민준과 커제의 대결은 막판까지 팽팽한 흐름으로 이어졌다.


신민준의 패색이 짙어진 상황에서 커제가 실수하며 전세가 역전됐다. 하지만 신민준이 끝내기 상황에서 다소 밀리면서 승패를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최종 승부는 324수 만에 신민준의 반집 승으로 끝났다. 신민준은 대어를 낚았다. 신민준의 승리를 토대로 한국은 4승 1패를 거두며 바둑 금메달을 품었다.

결승전에 참가하지 않은 이지현 9단을 포함해 6명이 남자 바둑 단체전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그중에서 신민준의 금메달에 관심이 쏠린 다른 이유가 있다. 금메달을 따낸 6명 중에서 유일한 병역 특례 혜택의 대상자이기 때문이다. 이지현은 이미 병역을 완료했고, 박정환은 지난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특례 대상이 됐다.


3일 중국 저장성 중국기원 분원에서 열린 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 바둑 남자단체 결승전에서 중국을 누르고 금메달을 차지한 한국 바둑 대표팀이 시상대에 올라 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박정환, 김명훈, 신진서, 신민준, 변상일, 이지현. [이미지출처=연합뉴스]

3일 중국 저장성 중국기원 분원에서 열린 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 바둑 남자단체 결승전에서 중국을 누르고 금메달을 차지한 한국 바둑 대표팀이 시상대에 올라 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박정환, 김명훈, 신진서, 신민준, 변상일, 이지현.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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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서, 변상일, 김명훈은 학력 미달로 병역 면제 대상이다. 신진서는 충암중학교에 다니다 중퇴해 최종 학력이 충암초등학교 졸업이다. 세계 최고의 기사들이 학업을 이어가지 않은 이유는 바둑 수련에 전념하기 위함이다. 바둑의 기술 향상 흐름을 고려할 때 수련을 게을리하면 최강의 자리를 유지할 수 없다.


다른 스포츠도 그렇겠지만 바둑의 경우 입대 공백은 치명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1999년 1월생인 신민준은 만 24세로 병역을 해결해야 하는 나이다. 바둑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면 입대로 바둑 인생이 중단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신민준은 특별한 의미가 담긴 대국에서 중국의 간판 커제를 꺾었다. 본인의 힘으로 당당하게 병역특례의 주인공이 됐다. 신민준은 이제 신진서, 박정환 등 다른 기사와 마찬가지로 병역 부담을 덜었다. 2023년 10월3일 커제와의 대국은 금메달을 넘어 바둑 인생을 뒤바꾼 명승부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류정민 이슈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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