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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래 일하는 韓부모들…"근무시간 줄여라" 하버드 교수의 일침[K인구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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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메리 C. 브린턴 하버드대 교수 인터뷰
30여년간 동아시아 여성 고용 등 연구
맞벌이 부부, 둘째 꿈꾸기 쉽지 않아
"초보 아빠에 4주 육아휴직 의무로 줘야"

편집자주대한민국 인구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기업에 있다. 남녀 구분 없이 일로 평가하는 기업 내 분위기와 가정 친화적인 문화가 곧 K인구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핵심이기 때문이다. 저출산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지만, 적어도 일터에서의 부담감이 걸림돌이 돼 아이 낳기를 주저하는 일은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시아경제는 가족친화 정책을 선도하는 기업을 찾아가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던 지점을 짚고, 현실적인 여건이 따라주지 못하는 기업과는 다각도에서 함께 방법을 찾아볼 예정이다. 이를 통해 기업부터 변하도록 독려하고,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도 분석한다. 금전적 지원보다 심리적 부채감을 줄여주는 회사의 문화와 분위기가 핵심이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다양한 측면에서의 대안을 제시한다.

"장시간 근로는 동아시아에서 일과 가정을 양립하지 못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남녀 모두 개인 생활과 직장에서의 시간을 분배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미국 사회학자로 동아시아 여성의 고용, 육아 문제를 40년 가까이 연구한 메리 C. 브린턴 하버드대 사회학 교수는 28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저출산의 핵심 원인으로 장시간 근로를 언급했다. 브린턴 교수는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여성의 고용과 출산율 변화 등을 분석, 연구해온 인물이다.

메리 C. 브린턴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28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장시간 근로가 동아시아에서 일과 가정을 양립하지 못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면서 "남녀 모두 개인 생활과 직장에서의 시간을 분배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본인 제공

메리 C. 브린턴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28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장시간 근로가 동아시아에서 일과 가정을 양립하지 못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면서 "남녀 모두 개인 생활과 직장에서의 시간을 분배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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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최근까지 동아시아 여성들의 삶을 연구하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한국 학자들과 여러 차례 국내 여성의 고용과 출산 문제를 들여다봤다. 1980년대에는 일본 게이오대에서, 1996년에는 연세대에서 객원 연구원으로도 활동했다. 2019년에는 미국 사회학 저널에 제출한 논문 ‘아이냐, 일이냐, 아니면 둘 다인가? 동아시아 고학력 여성의 고용과 출산(Babies, Work, or Both? Highly Educated Women’s Employment and Fertility in East Asia)’에서 한일 남녀 160여명을 심층 인터뷰해 두 나라의 고학력 여성의 출산율이 왜 낮은지에 대해 분석했다.

그는 한국이 "다른 서구 국가에 비해 더 오랜 시간 일한다"고 지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2022년 한국의 근로자 1인당 총 근무시간은 1901시간으로 OECD 평균(1752시간)을 훌쩍 넘어섰다. 한국보다 연간 기준으로 더 오래 일한 나라는 콜롬비아, 멕시코, 코스타리카, 칠레 등 일부 남미 국가 정도였다. 앞서 OECD는 2019년 보고서를 통해 1주에 50시간 이상 일하는 여성의 비율이 한국은 21%로 회원국 평균(8%)을 크게 웃돈다고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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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린턴 교수는 "(늦게까지 일하면) 20대 청년층이 결혼할 상대를 만나 서로를 알아갈 시간을 갖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전문직을 가진 사람이 가족들과 함께 보낼 시간이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여성의 경우 남편이 저녁 늦게 퇴근하면서 직장에서는 물론, 집에서도 육아를 비롯한 무급 노동을 하는 ‘이중 부담(double burden)’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가사·육아 부담이 여성에게 쏠려 있는 건 현실이다. 특히 국내 기업에서는 같은 관리자급이어도 여성이 퇴근한 이후 남성보다 가사 노동을 1시간 더 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공개한 ‘2023 여성 관리자 패널조사’에 따르면 남녀 과장급 이상 관리자 3648명의 하루 평균 가사 노동 시간은 여성 2.7시간, 남성 1.8시간으로 나타났다. 여성 관리자의 경우 본인의 평균 가사 노동 시간은 2.7시간이지만, 그 배우자는 1.5시간으로 집계됐다. 부부의 가사 노동 시간 중 3분의 2(65.3%)를 아내인 여성이 담당했다.

장시간 근로에… 커리어 원하는 女 선택 기로 놓여

브린턴 교수는 한국과 일본이 미국 등 주요국에 비해 유독 여성의 일·가정 양립이 불가능한 환경에 노출돼 있다고 봤다. 밤늦게까지 일하는 분위기 속에서 여전히 생계는 남성이, 가사·육아는 여성이 맡아야 한다는 사회적 관념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는 "장시간 노동이 직원의 지위·승진 가능성과 긴밀하게 결부된다"며 "이 때문에 커리어를 갖길 바라는 여성이 남성 직원과의 경쟁을 고려해 육아로 인해 근무 시간이 줄어드는 걸 원치 않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그들(여성들)은 일을 그만두고 온전히 가족에 집중하거나, 직장에서 꿈을 펼치면서 아이는 낳지 않는 것 중 선택을 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장시간 근로로 인해 성별에 따른 가사 노동 부담 차이가 지속되다 보니 맞벌이하는 부부 입장에서는 시간 제약으로 자녀를 둘 이상 가질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브린턴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2019년 논문에서 남편들이 평균 오후 9시 또는 9시30분에 집에 도착해 주중에는 가사, 육아에 기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고 지적했다. 또 가임기 고학력 기혼 남녀를 분석해봤을 때 부부 중 아내가 정규직 일자리를 포기하느냐와 일자리를 유지하느냐로 양분되는데, 후자가 둘째를 가지는 결정에서 보다 멀어진다는 설명이다.

실제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출생·사망 통계’와 ‘2023년 12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출생아 수 23만명 가운데 첫째 아이 비중이 60.1%로 최근 10년 내 8.5%포인트 증가했다. 둘째 아이 출산 비중은 감소세를 보였는데 지난해 한 해에만 11.4% 줄었다. 아이를 둘 이상 낳는 가정을 찾아보기 쉽지 않은 상황이 심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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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린턴 교수는 장시간 근로 외에도 한국의 저출산 문제에 대해 "학력이 낮은 남성 근로자의 경우 임금이 낮아 결혼할 때 주거 부담을 지는 전통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며 "이로 인해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려는 의욕은 더욱 꺾이게 된다"고 우려했다.


또 맞벌이 부부가 자녀를 맡길 공공 보육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공공 보육시설이 부족해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한참을 기다리는 일이 벌어질 뿐만 아니라 공공 보육시설의 시스템이 밤늦게까지 일하는 맞벌이 부부가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어서 비싼 사립 보육시설에 자녀를 보내야 하는 식이다. 브린턴 교수는 "한국의 경우 보육 시설의 수를 늘리고 보육 서비스의 질을 높이며 보육 서비스에 대한 신뢰를 키우는 것이 꽤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기업 내 관리자 역할 중요"…아빠들 육아 배워야

한국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첫 임무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브린턴 교수는 "한국 기업들이 근무 시간을 줄이고 저학력 근로자의 임금은 높이는 방향으로 노력하길 바란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한국 남성들이 육아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길 희망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남성의 육아 참여가 (지금보다) 더 높은 가치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사회적 규범이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만 커리어와 가정 사이에서 양립을 이루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남성도 적용되는 일이라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브린턴 교수는 일하는 부모의 일·가정 양립 과정에서 기업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특히 중간 관리자 이상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직원들이 효율적으로 일해 근무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게끔 그들(중간 관리자 이상)이 독려해야 한다"면서 "또 여성이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으로 업무 공백이 생겼을 때 업무 부담을 적절하게 분배해 여성 동료가 복귀했을 때 동료들이 그를 원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남성 직원이 육아휴직을 사용할 때도 동료들에게 업무 분배가 신중하고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브린턴 교수는 2018년부터 현재까지 하버드대 라이샤우어 일본 연구소 소장을 겸임하고 있다. 그는 2022년 일본의 저출산 문제를 다룬 책 ‘묶여버린 일본인 - 인구 감소를 가져오는 규범을 깨뜨릴 수 있을까’를 일본 현지에서 출간했다. 현재는 이를 영어 버전으로 내놓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브린턴 교수는 이 책에서 일본이 미국, 스웨덴보다 육아 관련 제도를 잘 갖췄지만 남녀의 역할 구분이 하나의 사회적 규범으로 뿌리 깊게 자리 잡으면서 이를 쉽사리 사용하지 못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한국과 일본은 OECD 회원국 중 남성 유급 육아휴직 제도가 잘 갖춰져 있는 국가로 꼽히지만 "현실에서 사용률은 매우 저조하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브린턴 교수에게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예비 아버지들은 짧은 기간, 예를 들어 4주라도 육아휴직을 (의무로) 주면서 급여를 전액 보전해줘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라고 답했다. 직장에서 눈치를 보느라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가겠다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상황에서 단기간이라도 배우자 출산 직후의 남성 전원이 의무로 육아를 위한 시간을 갖게끔 조치하면 인사상 불이익을 피하면서도 남성의 육아 참여 확대가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브린턴 교수는 "만약 그 시기에 (아빠가 된 지 얼마 안 된) 남성에게 회사에서 일하게끔 한다면 업무량을 극히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몇몇 아빠들은 초기 신생아 때 아이를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를 배우는 일에 스스로 시간과 정성을 쏟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며 "이렇게 되면 이상적인 모성과 부성에 대한 사회적 규범이 바뀌는 데 시간이 좀 더 걸리게 될 것"이라고 봤다. 그는 "남성 육아휴직을 의무화하면 육아휴직을 희망하고 육아에 적극적인 남성들이 겪어야 하는 낙인은 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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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 'K인구전략-양성평등이 답이다'
김유리·이현주·정현진·부애리·공병선·박준이·송승섭 기자
김필수 경제금융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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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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