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TSMC 구마모토 공장 개소식
日, 12조원·50년 그린벨트 해제 지원
SK하이닉스 용인공장은 민원·보상 등 홍역
첫번째 팹 가동 2027년으로 지연 분석
반도체 산업에서 한국, 대만에 수년 이상 뒤처졌다는 평가받는 일본은 반도체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전례 없는 속도전에 돌입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대만 TSMC를 유치하고자 사상 최대인 12조원의 보조금 지원과 50년 이상 묶어둔 그린벨트 해제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반면 우리 정부는 반도체 기업들의 시설투자를 독려하기 위해 법인세를 깎아주는 정도의 지원책을 내고 있다. 기업에 돌려주는 현금 보조금은 전무하다. '10년 안에 일본 반도체 산업이 다시 한국을 제칠 것'이란 전망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사천리'로 진행된 TSMC 구마모토 공장
TSMC가 오는 24일 개소식을 앞둔 일본 구마모토현 파운드리 1공장은 2021년 10월 계획이 발표된 이후 준공까지 불과 3년도 걸리지 않았다. 통상 5년이라는 팹 건설 기간을 무색하게 했다.
그 배경엔 일본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이 있었다. 일본 정부는 투자금의 40%인 4760억엔(약 4조4300억원)을 보조금으로 지급하며 공사가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지원 사격을 했다. 조건은 '일본에서 10년 이상 공장을 운영하고, 반도체가 부족할 때 일본에 우선 공급한다' 뿐이었다. TSMC 입장에선 가격 경쟁력을 10%가량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구마모토현 지방자치단체도 지하수로 공업 용수나 도로 정비 문제 해결에 직접 발 벗고 나서는 등 공장 부지 조성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용수 및 전력 등 기반 시설 확보에만 정부와 지자체, 주민이 수년씩 갈등을 겪는 한국과는 다른 모습이다.
일본 금융기업 규슈파이낸셜그룹은 TSMC가 구마모토현 지역 경제에 미칠 효과가 10년간 6조9000억엔(약 62조87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면서 "규슈 경제에 '100년에 한 번 올 기회'"라고 했다. TSMC가 11조2000억원을 투자하는 파운드리 1공장에 이어 2, 3공장까지 확정할 경우 효과는 더 증폭될 전망이다.
3년간 멈췄던 SK하이닉스 용인 클러스터
일본과 달리 우리는 이미 속도전에서 뒤처졌다. 용인 SK하이닉스 공장은 2019년 2월 부지가 선정됐지만 착공은 지금까지 다섯 차례 이상 연기됐다. 당초 계획으론 지난해부터 공장 건설이 시작됐어야 했지만 내년에야 착공될 전망이다.
지연 이유를 보면 '산 넘어 산' 형국이다.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지역 민원(11개월 지연)을 비롯해 토지·지장물 보상 장기화(1년6개월 지연), 용수 공급 인프라 구축 장기화(1년 지연) 등이 원인이다. SK하이닉스의 첫 번째 팹 가동 시점은 이로 인해 2027년까지 밀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기가 지체되면 사업비도 오른다. 당초 1조7900억원이었던 사업비는 2조3500억원 수준으로 약 5600억원 불어났다. 더 비싼 값에, 더 늦게 반도체 단지를 조성하게 된 것이다.
일본과 달리 우리는 민간 기업이 투자하면 정부가 세제나 인프라 등을 통해 간접 지원하는 형태다. 인허가 절차와 토지 보상, 지자체와의 협의, 전력과 용수 등 인프라 구축에 엄청난 에너지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우리 정부는 반도체 산업계의 민간 투자에 매달리고 있다"며 "국가별 지원책 격차가 향후 자국 내 반도체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데, 한국은 국내외 기업들의 투자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자기완결주의' 대신 선택한 '공급망'
일본은 자국기업의 일괄 생산보단 반도체 공급망을 확보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일본은 해외 기업에 보수적인 나라로 꼽힌다. 그간 연구개발(R&D)부터 소재 장비, 제조까지 자국 기업으로 꾸려나가는 '자기완결주의'를 고수해왔다. 하지만 기업의 국적보다 지정학적 위치가 중요하다고 보고 기업 국적을 따지지 않고 일본에서 투자와 생산을 취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 결과 TSMC,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이 생산거점을 마련키로 한 데 이어 인텔은 일본에 R&D 센터 개설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도 일본에 연구와 개발 거점을 설치하고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등 각종 방안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 역시 2025년 일본 요코하마시 미나토미라이 지구에 400억엔(약 3630억원) 규모의 첨단 반도체 R&D 거점을 신설한다.
정부 주도로 설립한 자국 반도체기업 라피더스의 반도체 R&D와 생산 투자에도 상당한 자금을 지원하며 자체 기술력 확보에도 주력하고 있다. 라피더스는 지난해 8월 설립된 법인으로 이미 홋카이도에 반도체공장 건설을 시작했으며 2027년부터 2㎚ 미세공정 상용화를 목표로 두고 있다. 2030년 1.4㎚, 그 이후에는 1㎚ 등 더 앞선 공정기술을 갖춰내 TSMC와 삼성전자 등 상위 기업을 추격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학교수는 "반도체는 정확한 타이밍에 공장이 가동해야 이득을 볼 수 있는 구조"라며 "현 정부가 그나마 타임 아웃제 등을 통해 인허가나 행정 절차의 소요 시간을 줄이겠다는 것은 다행이지만, 용수와 전력 등의 인프라 구축 사업을 좀 더 체계적으로 살펴 시간을 앞당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예주 기자 dpwngk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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