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려묘·길고양이 개체 수, 300만마리 육박
인간 사랑 독차지하지만…생태계 위협 '침입종' 지정
美서만 길고양이가 조류 200억마리 이상 죽여
마라도선 멸종위기종 보호 위해 길고양이 중성화
전문가 "TNR로 개체 수 조절…정부, 지자체 역할 필요"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반려동물을 키우는 문화가 국내에 퍼지면서 동물권에 대한 의식도 높아지고 있다. 개, 고양이를 기르는 가계가 늘어날 뿐만 아니라, 주인 없는 길고양이들을 위해 쉼터를 두거나 먹이통을 마련하는 등, 특정 동물을 위한 환경이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고양이들이 생태계에 위협이 될 수 있다면 어떨까. 최근 국제 학계·환경단체 등은 도시 내에 급격히 불어나기 시작한 고양이가 자신의 먹잇감인 조류를 무분별하게 해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사람 관심 독차지한 고양이…반려묘·길고양이 합쳐 수백만마리
반려동물 숫자는 최근 수년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 2020년 발표한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의식조사'를 보면, 이 해에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는 전국에서 638만가구로 추정돼 전년(591만가구) 대비 47만가구나 증가했다.
국내에서 주로 키우는 반려동물은 개와 고양이었다. 특히 반려견은 521만가구에서 602만마리를 키워 국내에서 가장 인기있는 반려동물로 꼽혔다. 하지만 반려묘의 숫자 또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같은 해 기준 182만가구에서 258만마리를 키우는 것으로 나타났다.
늘어난 것은 반려동물뿐만이 아니다. 도심에 서식하는 '길고양이' 숫자도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가 지난해 5월부터 12월까지 8개월 동안 집계한 도내 길고양이 개체수는 32만마리에서 최대 35만마리까지 추정됐다. 도내에서 가장 밀집도가 높은 지역은 1㎢당 평균 320.2마리의 길고양이가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귀여운 외양을 갖춘 고양이는 동물 애호가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유튜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매일 고양이 사진·영상 등이 쏟아진다.
주인 없는 길고양이들을 보호하려는 움직임도 늘고 있다. 고양이들이 자주 모이는 주차장, 골목길, 야산 등 특정 장소에 쉼터나 먹이통 등을 두고 관리하는 이른바 캣맘·캣대디가 대표적이다.
◆美에서만 조류 200억마리 잡았다…생태계 위협하는 '침입 외래종'
그러나 최근 '고양이 선호 현상'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도심을 제 집처럼 돌아다니는 고양이들 때문에 조류가 위협받는다는 지적이다.
사실 고양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생태계를 파괴할 위험이 있는 생물로 지정돼 관리 받고 있다. 지난 2013년 국제 환경기구인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세계 100대 침입외래종' 중 34위로 고양이를 꼽았다. 이 단체에 따르면, 고양이는 베스(54위), 뉴트리아(60위), 황소개구리(79위) 등보다 생태계 파괴 위험이 훨씬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그런가 하면 국립생태원의 '한국 외래생물 정보시스템'은 고양이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소형포유류의 개체 수를 급격히 감소시키고, 새를 잡아먹기도 하면서 생태계 교란을 발생시킨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고양이는 항상 '사냥 연습'을 통해 생존 기술을 연마하는 사냥꾼 본능을 가진 동물이다. 사진은 해외 한 가정집 마당에서 새를 사냥한 고양이 모습 /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원본보기 아이콘고양이가 생태계 파괴종으로 지목된 이유는 특유의 사냥꾼 본능 때문이다. 고양이는 새끼 시절부터 어미에게 사냥 기술을 전수 받으며 생존법을 터득하고, 완전히 자란 뒤로도 상대를 공격하는 '놀이'를 즐기면서 사냥 감각을 유지하는 본능을 지녔다. 집 안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느닷없이 빠른 속도로 이동하거나, 갑자기 덮쳐오는 것 또한 사냥감과 자신의 거리를 측정하는 연습이다.
이 때문에 여러 육식 동물과 달리, 고양이는 배가 부른 상태에서도 먹잇감을 보면 일단 공격하고 보는 습성을 가졌다. 이렇다 보니 고양이 개체 수가 지나치게 늘어나면, 주변의 설치류나 작은 조류 등은 씨가 마르는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
세계적 명성을 갖춘 학술지인 '네이처'지에도 고양이가 야생 조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다수 출간됐다. 미국 스미소니언 생물 보존 재단 소속 스코트 로스 등이 관련 논문 171편을 분석한 결과, 미국 내에서만 약 13~40억마리의 조류와 63~223억마리의 포유류가 고양이에 사냥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일부 지역에서도 고양이는 멸종위기 생물에게 위협이 된다. 일례로 지난해 10월 '섬사랑 수의사회', '제주동물권행동 NOW' 등 단체들은 마라도에 서식하는 길고양이들을 포획해 중성화 수술을 시행했다.
마라도에는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된 조류인 뿔쇠오리 등 여러 철새들이 서식한다. 특히 뿔쇠오리는 국내 멸종위기 야생동물 II 급 천연기념물 제 450호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는데, 개체 수는 지난 2017년 기준 2800~4100쌍에 불과했다. 만일 마라도의 고양이 개체가 불어나기 시작하면 뿔쇠오리를 멸종시킬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전문가 "공존하려면 길고양이 개체 수 조절 필요…지자체 역할 중요해"
시민들 또한 고양이가 도심 생태계를 해칠 수 없도록 관리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고양이를 기르고 있다는 직장인 A씨(29)는 "고양이를 사랑하기는 하지만, 애묘인으로서 고양이가 야생 생태계의 포식종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고양이는 번식 속도도 빠르고 자기 영역을 매우 민감하게 여기는 동물이다. 개체 수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면 인간이나 자연은 물론 고양이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회사원 B씨(30)는 "새를 기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고양이는 공포의 대상일 것"이라며 "우리나라도 다른 나라처럼 길고양이를 포획해서 중성화 수슬을 하는 등, 숫자를 적극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는 고양이 개체 조절을 위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원복 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는 "고양이에게는 사냥꾼 본능이 있고, 이로 인해 작은 새나 설치류 등을 위협할 수 있다는 인식에 공감한다"며 "이를 위해 우리나라를 포함한 선진국에서는 'TNR'이라고 불리는 개체 수 조절 사업을 벌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TNR은 포획(Trap)-중성화(Neuter)-방생(Return)의 약자로, 주인 없는 고양이들을 정기적으로 잡아 중성화 수술을 한 뒤 도심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작업을 뜻한다.
이 대표는 "길고양이 수를 정기적으로 집계하고 TNR 사업을 하려면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라고 촉구하며 "또 고양이에게 사냥꾼 본능이 있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동물은 배가 고플 때 적극적으로 사냥을 하기 때문에 고양이 쉼터, 먹이통 등을 두는 시민들의 활동은 생태계를 보존하는 데 긍정적인 기능을 할 것으로 본다"라고 덧붙였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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