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 대통령 "물가 급등 피해 노동자 보호"…리라화 폭락으로 실질 임금은 27% 줄어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최저임금 50% 인상안을 발표했다고 주요 외신이 이날 보도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치솟는 물가로부터 터키 국민들을 보호하겠다며 최저임금 인상을 발표했다. 하지만 정작 에르도안 대통령이 터키의 물가를 끌어올리는 장본인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공개한 성명에서 세금을 제외한 실질 월 급여가 올해 2826리라(약 21만3956원)에서 내년에 4250리라로 오를 것이라고 밝혔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은 물가 상승으로 피해를 입은 노동자들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터키 노동자의 약 40%는 최저임금 수준의 소득을 버는 것으로 알려졌다.
터키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1월에 21.3%로 치솟았다. 생계비가 오르면서 최근 정부 지지율은 떨어지고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도 벌어지고 있다.
물가 급등에도 불구하고 터키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내리고 있다. 터키 중앙은행은 이날 통화정책회의에서도 기준금리를 1%포인트 인하했다. 통상 물가가 오르면서 통화량을 흡수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는데 터키 중앙은행은 거꾸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터키 중앙은행은 최근 4개월 연속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했고 이 기간 동안 기준금리는 19%에서 15%로 내려왔다.
터키 중앙은행이 비상식적인 기준금리 인하를 지속하는 이유는 에르도안 대통령 때문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고금리가 높은 물가의 원인이라며 중앙은행에 기준금리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금리 부담을 줄여야 수출, 투자, 고용이 늘고 궁극적으로 통화와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결정 뒤 최저임금 인상안을 발표했다.
이날 정부가 최저임금 대폭 상향조정을 발표했지만 리라화 가치가 올해 급락한 탓에 실질적인 임금 상승 효과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리라화 기준으로 임금이 50% 늘지만 달러화 기준으로 실질 임금을 계산하면 되레 올해 초에 비해 27% 감소한다. 리라화 가치가 연초에 비해 50% 이상 폭락했기 때문이다. 리라화는 올해 초만 해도 달러당 7리라 선에서 거래됐으나 현재 달러당 15리라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레퍼니티브에 따르면 이날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결정 후 리라화 가치는 최고 5.2% 폭락해 달러당 15.595리라에 거래됐다.
코로나19로 경제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물가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렸던 중앙은행 총재가 경질되고 이후 기준금리 인하가 이어지면서 올해 리라화 가치가 추락했다.
전문가들은 에르도안 대통령의 전례없는 경제 정책 대응이 심각한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고금리가 물가를 야기한다는 이유로 계속 기준금리를 계속 낮추면 리라화 가치가 더 떨어지고, 물가 상승으로 가계가 더 어려워져 경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스탄물 Koc 대학의 셀바 데미랄프 경제학 교수는 물가가 오른다고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그 오른 임금 때문에 물가가 더 오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터키의 에너지와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다는 점에서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리라화 가치 하락도 경제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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