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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방치된 인도 위의 ‘지뢰’ … 맨홀 철판 밟고 미끄러져 중상입은 보행자에 ‘나 몰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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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김해 주택가 비탈길 보도 걷다 14주 진단

50대 택시기사, 40여일째 일손놓고 생계 막막

경남 김해시 외동 주민 문 모씨가 사고 지점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상현 기자 lsh2055@

경남 김해시 외동 주민 문 모씨가 사고 지점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상현 기자 lsh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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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영남취재본부 이상현 기자] 택시기사인 50대 문 모씨는 비번 날 보행자가 걸어가도록 만든 인도를 걸었을 뿐이다.


그에게 불운이 닥친 날은 비가 부슬부슬 내린 지난 8월 21일 오전이었다.

택시를 운행하던 노동의 시간은 멈췄고, 코로나19로 수입이 줄어든 와중에도 그나마 생계를 잇던 돈벌이마저 끊어졌다.


그 날의 사고 후 40여일 지나 바로 ‘그 자리’에서 그를 만났다.


“크게 다쳐 수술받고, 생업이 끊긴 것도 원통한데 공무원들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합니다”. 울분 섞인 그의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경남 김해시 외동의 한 아파트에 사는 문 씨는 8월 21일 오전 10시께 아파트 인근으로 가족을 만나러 가다 비탈길에서 비에 젖어있던 철제 맨홀 뚜껑을 밟고 미끄러져 그대로 나둥그러졌다.


왼쪽 다리 뼈 여러 곳이 골절돼 전치 14주 진단을 받았다. 아픈 것도 잠시, 당장 가족을 먹일 생계 걱정에 철렁했다.

수술 후 문 씨는 왼쪽 다리. 여러 곳이 골절돼 14주 진단을 받았다. [이미지출처=제보자]

수술 후 문 씨는 왼쪽 다리. 여러 곳이 골절돼 14주 진단을 받았다. [이미지출처=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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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생계를 정지시켜놓은 맨홀 뚜껑은 밋밋한 철판이었다. 비라도 내린 날이면 애써 피하지 않다간 ‘빙판’을 밟는 것과 같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요철같은 미끄럼 방지 처리도 돼 있지 않았다. 더구나 경사로에 폭 좁은 인도 한가운데 있었다.


이 철판은 30여년 전에 설치된 것 같다고 문 씨는 한 공무원으로부터 뒤에 들었다. 아무런 미끄럼 방지 처리가 없는 단순한 철판을 맨홀 위에 덮어놓은 것이었다.


문 씨는 40여일째 운전 일도 쉬고 있지만 앞으로 2~3개월 더 일손을 놓아야 한다. 다리 골절로 인한 피해도 심각하지만, 그보다 더 아프게 한 현실은 사고에 대한 책임을 서로에게 미루는 공무원들의 행태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문 씨는 안전 조치가 안 된 시설물에 대한 책임을 따지기 위해 김해시청 민원실에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시청 하수과로 전화가 돌아갔다.


하수과 직원은 문 씨에게 현장 확인 후 연락을 주겠다고 했지만, 며칠이 지나도 연락이 없었다. 다시 전화를 걸자 “현장 확인을 해보니 그 시설물은 하수도관과 관련된 것이 아니다”라는 답이 왔다.


시가 관리하는 시설에서 크게 다쳐 민원을 제기한 건데 자신들이 담당하는 시설이 아닌 것만 마지못해 확인해준 것이다.


문 씨는 “하도 답답해 다시 물어보니 ‘우리 것이 아니다’라는 답만 들었다”며 ‘하수과’의 태도에 볼멘소리를 했다.


그는 다시 시청에 전화해야 했다. 허가민원과로 연결됐다.


민원과 관계자는 내용을 알아본 뒤 “해당 시설은 지하에 깔린 KT 통신선 공사를 위해 설치된 것으로 안다”며 통신사 측이 “인도와 인접한 상가 건물주의 요청으로 지하에 통신선 공사를 했을 뿐 맨홀 뚜껑 설치와 관련한 것은 통신선을 요청한 건물주에게 물어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또 다시 책임을 넘기는 답변에 문 씨는 기가 찼지만, 정작 ‘떠넘기기’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문 씨가 미끄러져 부상을 입은 현장의 맨홀 뚜껑(위). 아래는 정상적인 미끄럼 방지 처리가 된 하수관 뚜껑이고, 위는 통신선이 매장돼 있는 밋밋한 철제판이다.

문 씨가 미끄러져 부상을 입은 현장의 맨홀 뚜껑(위). 아래는 정상적인 미끄럼 방지 처리가 된 하수관 뚜껑이고, 위는 통신선이 매장돼 있는 밋밋한 철제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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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권익위원회 국민신문고에 접수된 문 씨의 민원은 김해시 담당으로 지정됐지만, 김해시는 곧바로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로 넘겼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문 씨가 또다시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넣자, 다시 한번 민원은 김해시로 지정됐다. 결국 민원은 주인을 찾아가지 못하고 한국통신자연합회와 김해시 양쪽에 올라가 있는 상태이다.


탁구 경기를 보는 듯한 떠넘기기 랠리는 시청 도로과에서 일단 멈췄다.


도로과 관계자는 “해당 시설물에 관한 책임 소지를 확인해본 결과, 원칙적으로는 시로부터 해당 시설물 설치를 허가받은 건물주가 관리책임을 가지고 있다”며 “설치된 지 30년이 다 됐다 보니 맨홀 밑 전선 활용도 거의 없고, 건물주 측에서 관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며 시에서 시설물 철거 후 인도를 복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피해보상에 관해서는 “민원인이 개인적으로 건물주와 논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국가배상심의위원회를 통해 해결할 수 있도록 ‘안내’해드렸다”고 말했다.


문 씨는 “민원 제기 과정에서 주민이 다니도록 자신의 땅 일부를 인도로 내어 준 ‘건물주에게 피해 책임을 물어라’는 이해못할 얘기도 들었다”며 황당해 했다.


“사유 시설물인 줄 알면서 인도를 걷는 사람이 어디 있나”며 “소유야 어찌됐든 보행자가 다니도록 인도를 만들고 관리하는 쪽이 안전시설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는 것 아닌가”고 되물었다.


문 씨의 부상 소식을 들은 한 동네 주민은 “그동안 그 길에서 미끄러진 경우가 더러 있었는데 이번에 터질 게 크게 터졌다”며 “인도 관리를 도대체 누가 해야하냐”고 꼬집었다.




영남취재본부 이상현 기자 lsh205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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