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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톺아보기]공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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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규 전 서울변호사회 회장.

김한규 전 서울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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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멤버 RM과 지민이 각자 60억원에 이르는 주택을 매수한 것에 대해 ‘불공정’하다는 취지의 글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지난 2일 '블라인드'에 올라온 '방탄소년단 집 산거 보고 진짜 미칠 거 같다'는 제목의 글이다. 글쓴이는 대기업 직원으로 추정된다.


불만은 이렇다. “솔직히 얘네들은 하고 싶은 거 하다가 운 좋아서 빵뜬 것”이라며 “노력은 내가 더 하지 않았나? 얘네가 수능이라도 봤을까? 대학 4년을 다녀봤을까? 인적성 시험을 봤을까?” “난 하기 싫은 일도 꾸역꾸역하고 노력해도 집 하나 사기 힘든데 얘네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하다가 운 좋아서 떴는데 진짜 화나고 미칠 거 같다.”

열심히 노력해도 집 사기 힘든 세상이란 점은 공감한다. 그러나 글쓴이는 애당초 방향을 잘못 잡았다. BTS가 수능을 보지 않았다고 한들 그게 노력이 부족하다거나 좋은 집을 소유할 자격이 없다고 볼 수 없다. 글쓴이도 RM과 지민이 만큼 열심히 노력했겠지. 그러나 모든 국민이 오직 수능으로, 그리고 대학으로 남은 인생이 좌우되는 것이 과연 공정할까. 중졸인 손흥민이나 고졸인 류현진을 비교하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이번에는‘블라인드’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고 가정하자. “솔직히 내가 원청 직원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지 않을까. 그런데 나는 원청 직원과 똑같은 일을 해도 월급이 반도 되지 않아. 복지도 거의 없고.” 글쓴이는 하청업체 직원이다.


인터넷 댓글은 어떤 반응일까. ‘열심히 노력해서 원청에 취업했으면 당연히 대우를 받아야지’라는 반응도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것이 공정하다는 것이다. 이는 정규직과 기간제에 관한 논의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그러나 공정이라는 개념을 틀어서 생각해보면 어떨까. 지금 하는 일이 똑같은데, 다른 대우를 받는 것이 공정할까. 단지 정규직으로 또는 원청에 취업했다는 사실만으로, 기간제로 또는 하청업체에 취업한 것만으로 지금 직장에서 하는 일(생산성)이 똑같거나 비슷함에도 큰 차별을 받는 것이 공정할까.


2018년 12월 태안 발전소 석탄이송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현장에서 즉사한 고(故) 김용균씨는 한국서부발전과 용역계약을 맺은 하청업체에서 일했다. 당시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이 준 직접노무비는 522만원이었지만 고인 통장에는 단지 211만원만 입금됐다. 고인을 고용했던 하청업체가 고인의 월급보다 많은 311만원을 받아 갔기 때문이다. 하청업체는 무슨 역할을 했길래 1인의 근로자에 대해 1달에 300만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 것일까. 아무리 간접고용이 허용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쯤 됐으면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임금·고용안정성 등 근로조건에서 질적 차이가 나는 두 개의 시장이 양분된 상태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라고 한다. 양질의 일자리(대기업 정규직, 공무원)와 열악한 일자리(중소영세기업, 비정규직)로 나뉘고, 두 일자리 간 근로조건 격차가 클 뿐 아니라, 높은 장벽에 가로막혀 있어 이동이 자유롭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양질의 일자리라 불리는 300인 이상 대기업과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합치면 전체 노동자의 20%에 불과하다. 나머지 80%는 열악한 일자리다. 고 김용균씨와 같은 안타까운 죽음 앞에서 '더 열심히 노력해서 원청에 취업하면 되는 것 아니냐'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열악한 일자리가 점차 대세가 되고, 개인의 노력으로는 벗어나기 어려운 현실을 외면한 한가한 얘기다. 당장 우리 자식들, 우리 미래세대 절대 다수가 해당되기 때문이다.


검찰개혁이니 언론개혁이니하는 것보다 일자리 개혁문제가 우리에게 훨씬 중요하다. 몇 개 공공기관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조치만으로는 열악한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내년 3월 대선에 출마하는 유력 후보들은 이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어떻게 구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김한규 전 서울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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