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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英 화학산업 일으킨 '연금술사' 짐 랫클리프 [히든業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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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최대 화학기업 '이네오스' 창립자
연매출 600억달러 넘는 화학 자이언트
창업 초기, 살던 집까지 담보 맡겨
사모펀드·담보 대출 적극 이용한 인수합병 승부수
30여년 만에 수십조원 규모 대기업으로
랫클리프 회장 '수직적 통합' 경영전략 핵심

영국 화학기업 이네오스 설립자 겸 회장 짐 랫클리프. / 사진=이네오스 유튜브 캡처

영국 화학기업 이네오스 설립자 겸 회장 짐 랫클리프. / 사진=이네오스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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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19세기 산업혁명의 발상지이자 제약·항공우주 등 첨단산업 강국인 영국은 과거 화학 산업에서도 두각을 드러냈지만, 제조업 경기 불황과 대표 기업의 쇠락 등을 잇따라 경험하며 큰 위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화학 산업 전체가 초토화되는 경기 불황 속에서도 짐 랫클리프가 이끄는 '이네오스(INEOS)' 만은 큰 성공을 거둬, 현재는 영국 화학을 대표하는 거대 기업으로 자리 매김할 수 있었다. 작은 정유 공장으로 시작해 약 30년 만에 매출 기준 세계 5대 업체를 일궈낸 랫클리프 회장의 경영 비결은 무엇일까.


◆세계 화학업계 숨은 강자 英 이네오스

랫클리프 회장이 이끄는 이네오스는 사실 그 규모에 비해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는 이네오스가 기업간 사업(B2B)에 주력해 유명 소비재 브랜드가 거의 없기 때문이며, 또 지금껏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하지 않아 비공개 기업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네오스가 세계 화학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공식 홈페이지 자료에 따르면 이네오스는 지난해 기준 약 650억달러(74조3600억원)가 넘는 매출을 창출했으며, 전세계에서 2만6000명이 넘는 직원을 직고용했다. 매출 기준 BASF, 중국석유화공(시노펙) 등과 함께 세계 3위권 규모에 이르는 회사다.


기업 비상장주식의 약 60%를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랫클리프 회장 또한 포브스 집계 기준 올해 약 170억달러(19조4480억원) 수준의 순자산을 보유, 영국 최대 부호 중 한명으로 자리 하고 있다.

◆살던 집까지 담보 맡겨…성공 위해 '모든 것' 걸다


지난 1952년 영국 북부에서 출생한 랫클리프 회장은 임대주택에서 노동자 부모와 함께 살았다. 대학을 졸업한 뒤 석유기업 '에쏘'에서 근무하던 그는 1992년 한 미국계 사모펀드에 영입되면서 본격적인 경영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1990년대 영국 화학업계는 위기 상태였다. 영국 최대 화학 대기업이었던 '임페리얼 케미컬 인더스트리'(ICI)가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ICI를 비롯한 여러 대기업들이 크고 작은 화학 공장을 매물로 쏟아내는 상황이었다.


이네오스의 영국 스코틀랜드 정유시설. / 사진=위키피디아 캡처

이네오스의 영국 스코틀랜드 정유시설. / 사진=위키피디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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랫클리프 회장은 화학업계의 위기를 자신의 기회로 삼았다. 1992년 자신의 전재산에 더해 미국계 사모펀드, 주택 담보 대출금 등 동원 가능한 '모든 것'을 끌어모아 직원 400명 규모의 작은 정유 공장을 헐값에 매입했다.


지난 2018년 출간된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당시 공장 매입 결정은 랫클리프 회장의 인생에 "갈림길"과 같았다고 한다. 만일 경영에 실패하면 그 동안 그가 쌓아 온 모든 경력과 자금을 잃고 빚더미에 앉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내, 두 아들과 함께 사는 집을 은행에 담보로 주기 위후 무려 1년 동안 가족들과 끊임없이 논쟁을 벌였고, 결국 부인의 허락을 받은 끝에야 집을 팔아 넘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랫클리프 회장의 '승부수'는 정유공장 인수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이후로도 계속해서 펀드와 대출금을 적극 이용해 여러 공장을 사들였고, 결국 1998년에는 이네오스를 설립하는데 성공했다.


실제 이네오스의 급격한 성장세는 대부분 랫클리프 회장의 과감한 인수합병 결정에서 나온 것이다. 이네오스는 90년대부터 지난 2011년까지 약 30여년에 걸쳐 아모코, BASF, 바이어, 보렐리스, BP, 데구사, 다우 케미컬 컴퍼니 ICI, 몬산토 등 유명 화학업체의 공장들을 매입했다. 이 때문에 현재는 전세계 29개 국가에 총 194개의 화학시설·사무실·연구개발센터 등을 두고 있다.


◆수직적 통합 통해 경쟁적 기업 세워


랫클리프 회장은 단순히 펀드를 통한 공장 인수에만 집중한 게 아니다. 이네오스의 가장 큰 강점은 일명 '수직적 통합'이라고 불리는 경영 전략을 구축한 랫클리프 회장의 전략적 안목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수직적 통합은 부품 생산부터 완제품 결합, 그리고 유통까지 이어지는 가치사슬을 회사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경영 방안을 이르는 말이다.


이네오스의 석유화학 사업은 이같은 수직적 통합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이네오스는 영국 북부와 노르웨이를 잇는 북해 유전 지대에 석유·가스 시추 시설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네덜란드로 옮겨 저장할 수 있는 거대한 저장고를 구축하고 있다. 한편 저장된 석유는 영국·독일·미국 등에 위치한 화학 플랜트로 옮겨져 여러 사업에 필요한 제품들로 가공된다. 이 제품들은 이네오스 본사에서 자체 브랜드를 통해 광고·유통·판매까지 직접 담당한다.


이네오스의 화학 플랜트 / 사진=이네오스 유튜브 캡처

이네오스의 화학 플랜트 / 사진=이네오스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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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적인 수익 추구보다는 장기적인 산업 투자를 지향하는 철학으로 노동자들로부터 지지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지난 2008년 이네오스는 영국 북부 스코틀랜드의 정유시설을 인수하면서 당시 노조위원장이었던 필 맥널티와 '담판'을 지었다.


당시 맥널티는 영 매체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랫클리프 회장은) 가끔 사모펀드처럼 행동하며, 이 때문에 노동자 비용에 냉혹하기도 하다"라고 비판하면서도 "하지만 그는 자산 매각에만 치중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진짜 산업'에 투자하는 사업가"라고 시인했다.


영국 언론인이자 저술가인 피터 포브스는 지난 2018년 집필한 에세이 '이네오스가 새로운 ICI인가'에서 "랫클리프의 이네오스는 화학 산업의 근본(roots)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라며 "그는 (영국에서) 거의 죽어가던 산업을 사실상 부활시켰다. 정말로 놀라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전략적 안목 신비주의 갖춘 英 화학업 '연금술사'


랫클리프 회장은 이네오스를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일으켜 세워 영국 화학업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 받아 지난 2008년 영국 화학 공학 연구소로부터 특별 연구원 지위를 받았다. 또 지난 2018년에는 여왕으로부터 대영제국 훈장을 수여 받기도 했다.


그러나 높은 명성과 영향력에도 불구, 랫클리프 회장은 평소 미디어 노출을 극도로 지양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정치 성향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단지 지난 2016년 영국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투표 당시 찬성 입장을 밝히면서 "단기적인 손해보다 장기적인 이득을 노려야 한다"고 언급한 정도다.


이같은 전략적 안목과 신비주의 덕분에 랫클리프 회장은 영국에서 '연금술사'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작은 석유 정제 시설에서 시작해 수십년 만에 70조원이 넘는 가치를 창출하는 사업체로 변모시켰다는 평가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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