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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산책] 보안여관 - 80년 나그네들의 쉼터, 예술문화 갤러리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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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일본인 건축가 설계
2002년까지 숙박공간 쓰여
2007년 최성우 대표 직접 매입
카페·서점·갤러리 복합예술공간 변신

옛여관에 갤러리 '파격 시도' 주목
단순히 오래된 건물 보존을 넘어
지속가능한 예술산업 보금자리 꿈꿔
"문화예술공간, 일상 예술 담는 역할
지원없이 자생적·독립적 기관 필요"

보안여관 간판. / 사진=임주형 기자 skepped@

보안여관 간판. / 사진=임주형 기자 skepp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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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우리는 흔히 특정한 공간에 애착을 갖는 경우가 많다. 도시의 삶이 지배적인 현대사회에서 시민들은 더더욱 의미 있는 공간을 갈구한다. 인구가 밀집한 척박한 환경일 수밖에 없는 도시에서 개방감을 느끼려 공원이나 광장을 선호한다. 바쁘고 복잡한 도시생활 속에서 여유와 향수를 느끼고 싶어 하는 마음, 갈수록 현대적인 디자인과 패턴이 선호되는 가운데서 고풍스러운 멋을 담고자 하는 욕구 또한 자주 발산한다.


그래서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시민들의 이 같은 다양한 생각을 읽어내 도심 내에 광장을 더 넓게, 많이 조성하려 노력한다. 역사적 의미가 있는 건물이나 구조물을 천문학적인 보수 비용을 들여서라도 재생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한다. 특정한 공간에 얽힌 사회적·역사적 기억을 남김으로써 무미건조한 도시생활 속 인간들의 마음에 오아시스의 샘을 만들어보려는 뜻일 수 있다.

하지만 부족한 주택을 마련하기 위해 동시다발적으로 재개발과 재건축, 구도심의 고밀도 재생사업 등이 추진되면서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이 온전히 보존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런 흐름 속에 서울 경복궁을 중심으로 북촌이나 서촌 골목길이 이른바 ‘핫’한 장소로 젊은이들 사이에서까지 인기를 끌게 된 것은,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도시 서울에서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좁은 골목길에 고풍스러운 카페와 맛집, 공방 등을 품고 있어 인스타그래머들이 집중적으로 방문해 기록을 남긴다. 서촌 골목 안쪽 깊숙한 곳에서 약 80년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보안여관’도 그런 곳 중의 하나다.


보안여관 신관(가운데)와 구관(오른쪽). 구관은 지난 1942년 지어졌다. / 사진=보안여관

보안여관 신관(가운데)와 구관(오른쪽). 구관은 지난 1942년 지어졌다. / 사진=보안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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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목조건물인 보안여관은 앞으로는 궁궐 성벽, 옆·뒤로는 신식 빌딩에 둘러싸여 있다. 마치 이 장소만 시간이 정지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1942년 일본인 건축가가 설계해 지었다는 보안여관은 2002년까지 나그네들의 쉼터이자 숙박 공간으로 쓰였다. 특히 우리 문학계의 거장들이 거쳐간 곳이어서 소중한 측면이 있다. 미당(未堂) 서정주는 ‘천지유정’에서 "1936년 가을 함형수와 나는 둘이 같이 통의동 보안여관이라는 데에 기거하면서 김동리, 김달진, 오장환들과 함께, ‘시인부락’이라는 한 시의 동인지를 꾸며내게 되었다"고 썼다. 최성우 대표는 2007년 이런 역사가 있는 건물을 매입한 후 카페·서점·갤러리 등이 한데 모인 복합 예술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 1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문화 경영가로서 활동해온 최 대표 입장에서 보안여관은 최적의 공간이었다고 한다. "당시 인사동, 삼청동은 이미 지나치게 상업화돼 문화예술공간을 만들 환경은 아니었다"는 최 대표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서촌으로 오게 됐고 보안여관을 만났다"고 회상했다.


보안여관은 현재 복합 문화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사진은 보안클럽 내부 모습. / 사진=보안여관

보안여관은 현재 복합 문화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사진은 보안클럽 내부 모습. / 사진=보안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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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릴 때 적산가옥인 시골집에서 자랐기 때문에 이런 오래된 목조건물에 아주 익숙했다"면서도 "온갖 좋은 건물이 널린 서울 한복판에 이런 공간이 있는 게 독특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곳이라면 예술활동이 가능하겠다 싶어 이 여관을 매입했다"고 설명했다.


최 대표는 보안여관의 외관·인테리어를 최대한 보존하면서 옛 여관을 갤러리로 바꿔놓았다. 이후 보안여관에서 열린 첫 전시회는 단번에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당시만 해도 서울의 현대미술 전시는 최신식 건물에서 열리는 고급스러운 이벤트였다. 이렇다 보니 다 스러져가는 옛 여관 건물에 마련된 갤러리는 그동안의 관행을 깨는 ‘파격적 시도’로 받아들여진 셈이다.


그럼에도 최 대표는 보안여관에서 연 전시회가 이색적으로 받아들여진 것 자체가 어색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수백 년 된 건물이나 공장이 많은 유럽, 일본 등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도해온 전시 방식일 뿐이다. 배우는 과정에서 익숙해진 것을 국내에서 한 것이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보안여관 1층에 마련된 보안카페. / 사진=보안여관

보안여관 1층에 마련된 보안카페. / 사진=보안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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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여관을 유지하면서 예술활동의 공간으로 성장시키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최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1940년대에 지어진 일본식 목조건물은 수많은 기둥과 골조로 이뤄져 있다. 이 때문에 건물 자체는 튼튼하지만, 썩거나 파손된 부분이 없는지 확인하고 보수하려면 상당한 노고와 비용을 들여야 한다.


여관 유지·보수 작업을 두고는 "마치 생명을 돌보는 일 같다"고 비유했다. 그만큼 손이 많이 가고, 깊은 관심과 노고가 필요한 작업이라는 뜻이다.


최 대표는 이제 단순히 옛 건물을 보존하는 선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보안여관이 지속 가능한 예술산업의 보금자리가 될 수 있기를 꿈꾼다. 최 대표는 "별도의 지원 없이도 자생적으로, 독립적으로 뻗어나가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늘날 많은 예술기관이나 갤러리가 대기업의 금융 지원을 받으며 운영된다"며 "물론 그럼으로써 예술가들에게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면 좋은 일이겠지만, 결국 예술은 독립적이고 자유로울 때 진정으로 의미를 발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문화예술공간이란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고 접촉하는 일상적인 예술을 담아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사회에는 문화와 예술이 중심이 된 자생적이고 독립적인 예술기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대표는 "한국처럼 도시가 압축적으로 성장하고 또 외곽으로 빠르게 팽창하는 나라일수록 원도심(原都心·도시의 근간이 된 중심지)은 점점 잊히고 버려질 수밖에 없다"며 "그렇게 소외된 공간을 재활용하고 재생시키는 일을 많은 사람이 고민하고 공유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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