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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제타', 그저 '보통의 삶'을 원하는 청년의 자화상 [강주희의 영상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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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하지 못하는 '로제타'
청년에 드리운 삶의 그림자

영화 '로제타' 스틸 이미지. /사진=네이버 영화

영화 '로제타' 스틸 이미지. /사진=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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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강주희 기자] [편집자주] 당신은 그 장면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문득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를 때가 있지 않으신지요. 이는 영화가 우리의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화는 현실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합니다. 영상 속 한 장면을 꺼내 현실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전해드립니다. 장면·묘사 과정에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벨기에의 영화감독인 다르덴 형제가 1999년 발표한 영화 '로제타'는 직장에서 해고된 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18살 소녀 로제타의 삶을 그린 영화입니다. 영화는 일자리를 잃었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와 원망에 차올라 걷는 로제타의 뒷모습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수습 기간이 끝났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로제타는 사장에게 강력하게 항의하며 해고 사실을 온몸으로 거부하지만 결국 일터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가난한 노동자 계급인 로제타는 알코올의존증에 시달리는 어머니와 이동식 트레일러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수선한 옷을 되팔아 몇 푼 안되는 벌이를 생활에 보태곤 있지만 로제타는 거의 가장이나 다름없는 역할을 합니다.


최소한의 생계유지를 위해 어디든 무작정 들어가 필사적으로 직장을 구해보려 애써도 '지금은 직원이 필요없다'는 답만 돌아옵니다. 왜 이렇게 필사적으로 살아야 하는 걸까. 스스로 자신을 돌아볼 틈도 없이 로제타는 매순간 전투적으로 사는 일에만 매달립니다.


영화 '로제타' 스틸 이미지. /사진=네이버 영화

영화 '로제타' 스틸 이미지. /사진=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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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로제타는 자신에게 호의적인 와플 가게 직원 리케의 도움으로 와플 반죽 공장에 취직하게 됩니다. 어떤 곳으로부터도 위안을 얻을 수 없던 그녀에게 리케는 친구가 되어주고 갈 곳 없는 그녀를 재워주기도 합니다.

모처럼 걱정없이 리케와 저녁식사를 한 뒤 로제타는 침대에 누워 읊조립니다. 난 일자리가 생겼고, 친구가 생겼고, 이 시궁창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로제타가 원하는 것은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며 굶주릴 걱정없이 사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로제타는 어렵사리 취업한 와플 공장에서도 사장 아들에게 밀려나 또다시 실직자가 됩니다. 일자리가 절실했던 그녀는 결국 자신에게 친절을 베풀었던 리케의 부정을 사장에게 고발하고 그의 일자리를 꿰차는 일까지 저지르게 됩니다. 생계유지를 위해 윤리마저 저버려야 하는 삶이 로제타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인 것입니다.


영화는 매 순간 삶의 무게와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는 로제타의 모습을 근거리에서 포착하면서 실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청년들의 삶과 고통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영화 '로제타' 스틸 이미지. /사진=네이버 영화

영화 '로제타' 스틸 이미지. /사진=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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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타'는 유럽에서도 선진국으로 꼽히는 나라 벨기에의 당대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 영화입니다. 끝없이 경쟁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 그럼에도 어느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는 현실을 꼬집은 영화는 만들어진 지 20여 년이 지난 현재 대한민국 현실에 대해서도 지적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청년 실업 문제는 주지하다시피 2021년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한국의 고용상황은 지난 1998년 외환위기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심각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경제활동인구는 전년 대비 17만4000명 줄어 감소 폭이 1998년(35만4,000명)에 이어 두 번째로 컸습니다. 취업자 수도 전년 대비 21만8000명 줄어 마찬가지로 1998년(127만6000명) 이후 가장 충격이 컸습니다.


반면 지난해 실업자 수는 110만8000명으로, 1998년 149만명, 1999년 137만4000명에 이어 가장 많았습니다. 실업률도 4.0%로 2001년(4.0%) 이후 19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올해 1월 실업자 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41만7000명 늘어 사상 처음으로 150만명을 넘어섰습니다. 끊임없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편입하려 애쓰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해서 그 영역 밖으로 밀려나는 로제타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영화의 끝에서 로제타는 와플 가게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더이상 일하러 나가지 않겠다고 통보합니다. 친구를 배신하면서 얻은 일자리로 잠시나마 생계 걱정은 잊게 되었지만, 윤리를 저버린 삶 또한 로제타가 원하는 '평범한 삶'은 아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로제타는 트레일러로 돌아와 짊어진 가스통만큼이나 버거운 삶을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그녀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영화는 보여주지 않은 채 끝을 맺습니다.


청년들에게 드리워진 삶의 무게는 가벼워질 수 있을까요. 로제타는 한 개인이지만 이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치부하기엔 150만 명이란 실업자 수는 너무나 커 보입니다.




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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